분류 전체보기142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수화 김환기의 생애와 작품에 관하여 신안군 기좌도(箕佐島, 현재 안좌도)에서 1913년에 태어난 수화(樹話) 김환기(金煥基)는 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작가이다. 1974년 미국 뉴욕에서 생을 마칠 때까지 끊임없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가꾸고 개척한 몇 안 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예술가로 화가로 산다는 것에 회의가 들만한 이 시대에 하나의 해답을 제시한 김환기의 작품세계를 들여다본다. 1. 잊힌 김환기, '한국미술대상전'에서 대상으로 한국 화단이 놀래다. 19060년대 후반에는 회를 거듭할수록 국전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높아가던 시절, '관전'(官展)이 아니라 '민전'(民展, 민간이 주최하는 전람회)으로 한국미술을 발전시키자는 의욕으로 여러 신문사들이 공모전을 만들던 시절이었다. 1970년 한국일보 주최 에 출품한 가 대상을 받으며.. 2024. 3. 14. 불안과 공허라는 우리의 현재 풍경을 닮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2 동경도미술관에서 개최되는 데 키리코 전시에 출품되는 작품을 중심으로 데 키리코의 예술세계를 알아보려 한다. 데 키리코 전시에서는 자화상과 초상, 형이상학 회화, 1920년대 전개, 회화전통으로의 회귀 : 네오 바로크 시대, 신형이상학 회화, 5개 영역으로 나누어 구성되는 듯하다. 1. 자화상데 키리코 만큼 자화상을 많이 그린 작가도 드물 것이다. 1910년대부터 꾸준히 자화상과 여러 초상을 그렸다. 따라서 시대별로 변화하는 작가의 얼굴에서 세월과 작가의 생각이 변화하는지 추측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 키리코가 왜 자신의 초상화를 많이 그린 이유는 나름 추측하면 자신의 심리 혹은 예술관을 그때그때 표현하려는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독일에서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1911년부터.. 2024. 3. 9. '외교관' 미드에서 재스퍼 존스의 작품을 아트 마케팅하는 이유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외교관(THE DIPLOMAT)을 소개하는 영상을 보면서 인기 있는 또 다른 이유를 찾았다. 구성과 줄거리도 재미있지만, 건물 곳곳에 등장하는 미술작품을 보며 아트 마케팅의 진수를 볼 수 있었다. 요소요소에 심어놓은 작품은 드라마 사실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미술작품을 알리려는 치밀함을 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외교관 개요 기본정보 배 경 : 미국과 영국 그리고 유럽 공 개 일 : 2023년 4월 20일 공개 OTT : 넷플릭스 제작, 연출 : 데보라 칸 구 성 : 시즌 1, 8부작 출 연 진 : 케리 러셀, 루퍼스 슈얼, 데이빗 기아시 외 포스터 줄거리와 출연진을 소잭하기 전에 포스터부터 보고 가야겠다. '성조기'와 '유니언 잭'을 양쪽에 세우고 가운데 여.. 2024. 3. 8. 불안과 공허라는 우리의 현재 풍경을 닮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 국립현대미술관은 무엇을 하나, 그 많은 인력과 예산을 어디다 쓰는지라는 글을 쓰며 자료 조사를 하다, 일본 동경도미술관에서 이태리 작가,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 전시를 한다는 정보를 알게 되었다. 초현실주의에 많은 영향을 끼친 데 키리코의 작품은 불안과 공허라는 우리의 현재 풍경을 닮아 있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 1888~1978) 작품의 제작배경키리코는 철도 엔지니어로 일하는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곳은 그리스 보오로 항구로 유년시절을 이 항구도시에서 보냈다. 그의 아버지는 시실리아의 귀족 출신으로 직업상 그리스 보오로 항구에서 살다가 아테네로 옮겨왔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서양의.. 2024. 3. 7. 저평가된 동양화가들 : 북종화 전통을 지키고 이어낸 이당 김은호 - 3편 3편에서는 이당 김은호가 50년대 말부터 1979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작품 제작활동을 알아보려 한다. 이 시기에도 그의 초상화는 여전히 인기가 있어 역사인물의 표준영정을 많이 제작하였고,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등 비교적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또 60년대에 들어서는 이전의 형식과 다른 산수화를 제작, 발표한다. 50년대 말부터 1979년까지 김은호의 활동 1949년 제1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가 시작되면서 왜색을 제거하고 민족 정신을 되살리려는 운동이 일어났으나, 결과론적으로는 그다지 성공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다. 이것도 어디까지나 현재의 잣대이지만 말이다. 왜냐하면 '조선미술전람회' 형식을 그대로 모방한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는 선전이 가지고 있던 여러 문제를 그대로 안고 있는 관전이었기 때문.. 2024. 3. 7. 이전 1 ··· 13 14 15 16 17 18 19 ··· 2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