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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사회

암흑한 수난에 맞닥트린 문화재를 지켜 낸, 간송 전형필 - 4부

by !))*!))* 2024. 1. 6.

간송 전형필(澗松 弼, 1906~1962)은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간송은 부친이 물려준 많은 재산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암흑한 수난에 맞닥트린 문화재를 모으고, 지키는데 평생을 바쳤다.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짓고,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민족정신을 이어갈 교육현장을 지켜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수많은 서적과 서화, 석조물과 자기를 수집하여 국보로 지정된 것만 수 십 점에 이른다. 최근 경복궁 낙서 테러와 함께 간송의 문화에 대한 사랑을 알아보기로 한다.

나라 정신을 지키는 일에는 양보가 없었던 간송

 

 

 

간송은 문화재를 수집한지 불과 10여년 만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것들만 모으게 되었지. 하지만 일본은 점점 더 우리나라를 못살게 굴었어. 중국과 전쟁을 일으키면서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배급으로만 나누어주고, 모든 사회활동을 통제했지. 또 우리민족의 전통과 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한글은 쓰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했지. 날로 거세어지는 일본 탄압에 간송은 또 한번 결심을 하게되지.

개관 당시 보화각
보화각

북단장 안에 박물관을 세워 문화재를 전시하고 우리민족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자는 생각을 실천에 옮기로 말이야. 간송은 1938년에 사립미술관을 세우는데, 빛나는 물건을 모아두는 집, ‘보화각’(葆華閣)이라고 위창 선생님이 이름을 붙여주셨지. 75살이었던 위창 선생님은 너무 기뻐 “때는 무인년(1938년) 윤 7월 5일 간송 전군의 보화각 상량식이 끝났다. 내가 복받치는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이에 명을 지어 축하한다. 우뚝 솟아 화려하니, 북관을 굽어본다. … 세상 함께 보배하고, 자손 길이 보존하세”라는 감격에 겨운 글을 남겼지. 

여기가 바로 ‘보화각’이야.
그렇지! 지금은 ‘간송미술관’이라고 부르지만, 간송이 돌아가시고 난 뒤에 붙인 이름이지.
그러면 위창 선생님이 쓴 글은 어디에 있어.
어디에 있나 한번 같이 찾아볼까.

보화각을 설립한 간송은 돌로 만든 덩치가 큰 문화재를 모으기 시작했어. 돌탑이나 돌부처, 부도, 석등도 일본인이 마구 가져갔기 때문에 이러다간 하나도 남아나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지. 어떤 탑은 부서지기 직전인 것도 사들이고, 일본으로 건너 간 것도 되사들였지.

 

이때 일본은 큰 전쟁을 일으키면서 날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우리 민족을 더욱 못살게 굴었어. 우리말을 못쓰게 하더니, 결국은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게 했지. 하지만 간송은 이름을 절대로 바꾸지 않았지. 아이들 이름도 바꾸지 않아서, 학교에서 많은 놀림을 받아도 모른척했지. 간송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하던 기간에는 어떤 공식적인 지위를 갖지 않았지. 그만큼 자부심이 강했고, 우리나라의 정신을 지키려했지.

보수중인 보화각
보수중인 간송미술관

교육으로 우리 정신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보성학교 인수


1940년에 간송은 또 큰일을 하기로 결정했지.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던 보성학교를 구하기로 결심한 것이지. 인재를 길러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보성학교의 설립이념을 살리기 위한 결정이었지. 학교를 사들이고 난 뒤에는 결코 이러쿵저러쿵 학교 일에 간섭하지 않았어. 올바른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확실하게 자신은 지키면서도 그 기준을 남에게는 절대로 강요하지 않았지. 또 학식이 인품이 뛰어난 분들에게는 그만큼 깍듯하게 대접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최소한의 예의만 지켰지.

 

 

 


일본 식민지 때에는 ‘조선총독부’ 총독이라면 누구나 그 앞에서는 기죽기 마련이었지. 한번은 그렇게 기세 등등한 총독이 보화각에 있는 문화재를 보여달라는 부탁이 총독비서로부터 들어왔지. 간송은 ‘오겠다는 사람, 막을 수 없지’라는 말로 승낙을 했지만, 보화각에 도착한 총독을 30분이나 기다리게 했어. 행동으로 우리의 문화재를 보러왔으면 문화재를 보면 되지, 그 외에 것을 바라는 마음에 면박을 준 것이지.

 

간송은 태연히 홍차 한잔 대접하고 그 총독을 돌려보냈지. 하지만 일본의 학자가 보화각을 보겠다고 요청했을 때는 전혀 달랐어. 친절하게 보화각을 안내하고 나중에는 연회까지 베풀면서 우리 문화재에 관해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지.

고집 센 사람인 것 같아.
고집이 센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존감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라고 말해야지.

자존심이 무언데?

자존감이란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지. 옳은 일에는 물러서지 않고,
그른 일은 하지 않는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이지.

꼬맹이도 자기를 사랑하면 열심히 이빨도 열심히 닦고 세수도 열심히 해야 하는데,
자존감이 없는지 깨끗이 않하는 것 같아! 아닌가?
그건 그렇고, 한글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아니? 

 

 

훈민정음 해례본을 입수하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만들었지! 그래 세종대왕이 집현전의 학자들과 함께 연구해서 한글을 만들었어. 한글을 만들게 된 이유와 방법 그리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설명한 책도 출판했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이라는 책이지. 이 책은 딱 하나 남아있는데 바로 간송미술관에 있지. 하늘이 우리 한글을 우리들에게 소중하게 사용하라고 간송에게 이 책을 수집하게 한 것인지도 모르지.

훈민정음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미술관 소장


1943년에는 일본의 전세가 날로 기울어 무지막지한 힘으로 우리나라를 못살게 굴던 때야. 심지어 한국어 말살정책으로 모든 신문과 책은 일본어로만 쓰도록 했지. 날로 심해지는 일본의 횡포에 간송도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어왔지만, 나라 일은 점점 걱정이 깊어졌지. 희망의 빛이 없어지려는 그 때 간송에게 셋째 딸 희우가 태어나 오랜만에 얼굴에 웃음을 찾았지.

 

그해 늦여름 석양이 질 무렵 ‘한남서림’에 들러 잠시 더위를 피하고 있는데, 옛날 책을 거래하는 상인 바쁘게 그 앞을 지나 가더래. 간송이 불현듯 저렇게 서두르는 폼이 무슨 곡절이 있으리라 짐작하고는, 이순황이라는 사람에게 무슨 일인지 알아보게 했어. 훈민정음이라는 책을 사기 위해 돈을 구하러 가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온 이순황에게 간송은 얼마나 필요한가라고 물었대. 1천 원이라고 대답을 했는데, 간송은 두말없이 1만천 원을 내주면서, “천원은 수고비요”말 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구해오라고 당부를 했지.


이렇게 구해온 훈민정음을 아주 깊숙이 숨겨놓았지. 왜냐하면 그때는 한글을 말하지도 쓰지도 못하게 했기 때문이지. 그렇게 훈민정음은 간송미술관에 잘 보존되어 한글을 만든 원리를 우리가 알 수 있게 한 것이지. 그때 간송이 한남서림에 들르지 않았다면, 아니 그 상인이 지나가도 별 뜻 없이 간송이 무심코 넘기고 말았다면, 우리는 지금 한글에 대해 잘 모르면서 사용하고 있을 거야. 이런 이유 때문에 문화재를 본존하고 지켜야 하는 것이기도 하지.


기역, 니은, 아, 야, 어, 요, 이런 것을 설명한 책이 바로 그 책이야?
그렇지. 훈민정음이라는 책이지. 중학교쯤 가면 배울 거야.

1943년에 그 책을 수집했으면, 1945년에 우리나라가 해방되었잖아.
그렇지 훈민정음을 구했지만 일본의 서슬에 크게 기뻐 할 수 없었어.
그래서 해방될 때까지 고이 간직하다가, 해방 된 뒤에 여러 학자에게 공개해서 연구하게 했지.

 

 

 

암흑한 수난에 맞닥트린 문화재를 지켜 낸, 간송 전형필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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