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은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간송은 부친이 물려준 많은 재산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암흑한 수난에 맞닥트린 문화재를 모으고, 지키는데 평생을 바쳤다.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짓고,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민족정신을 이어갈 교육현장을 지켜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수많은 서적과 서화, 석조물과 자기를 수집하여 국보로 지정된 것만 수 십 점에 이른다. 최근 경복궁 낙서 테러와 함께 간송의 문화에 대한 사랑을 알아보기로 한다.
문화재 지키는 일에는 물러서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문화재를 사려면 돈이 많이 있어야 되겠네.
그렇긴 하지만 반드시 돈으로만 모을 수 있는 것은 아니야.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과 보는 눈을 가지고, 정성으로 해야 하는 일이야.
특히 아름다운 것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하지.
그래도, 돈이 많이 있어야 되는 것 아냐!
문화재를 모으는 일은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는 것과 같은 일이야.
돈도 많이 있어야 하겠지만, 가지고 있는 돈을 어떻게 쓰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에이, 잘 모르겠다. 책에서 본 적 있는데 여기에는 없네. 학도 있고, 구름도 있는 도자기 말이야.
아!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말이구나.
간송이 '북단장'을 마련하고 문화재를 모으자 소문이 퍼져, 일본인들과 경쟁은 점점 더 심해졌지. 그때는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더 열심히 모으고 있었기 때문이지. 하지만 간송은 나라의 정신과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문화재를 수집했기 때문에 질 수는 없었어. 그래서 일본인들이 수집한 문화재에 대한 정보도 알아내고, 간송을 대신해서 구입해 줄 수 있는 일본인 거래상이 필요했어.
그때 만난 거래상이 바로 신보(新保)라는 일본인이지. 신보는 정직하기도 했지만, 간송의 인품에 반해 자신의 능력과 정성을 다해서 문화재를 간송에게 소개했지. 개성에서 나왔다고 하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도 그가 소개해서 샀는데, 당시에 엄청나게 큰돈인 2만 원이나 주고 샀지. 간송이 커다란 사명감이 없었다면, 그리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이지.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을 구입하다.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높이 42.1cm, 입지름 6.2cm, 밑지름 17cm, 12세기 후반, 간송미술관 소장
구름과 학을 상감(조각도로 파낸 빈 틈을 다른 색을 내는 점토로 메우는 기법)으로 무늬를 자기 전체에 장식한 병이다. 병은 항아리와 달리 주둥이가 좁은 것을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왜 매화를 뜻하는 '매'라고 했는지 정확하지는 않고, 고려 시대에도 매병이라고 부르지 않았다.
쓰임새에 관해서도 여러 말이 많아 술이나 꿀을 담는 것으로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청자는 푸른색을 내는 자기라는 뜻이다. 점토 속에 있는 산소를 적당히 환원(산소와 결합해 부식하는 산화와 반대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시키면 푸른색을 내지만, 여러 조건이 충족되어야 아름다운 색을 낼 수 있다.
자기는 사람의 몸 형태처럼 비유하는데, 어깨가 빵빵한 것이 시금치를 먹으면 힘이 생기는 뽀빠이를 닮았다. 날렵한 허리와 함께 건강한 몸매를 한 것이 고려의 씩씩한 기백을 닮았다고들 한다.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
또 한번은 신보의 도움으로 청자상감운학문매병과 쌍벽을 이룰만한 아름다운 병을 구입하게 되지.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인데 ‘보물 제241호’로 지정되었다가 얼마 전에 국보 제294호로 재지정된 아름다운 병이야. 신보는 이병이 경매에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간송에게 알렸지. 그리고 경쟁이 심해 많은 돈을 들여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지만, 잠깐 동안 생각한 간송은 그 자리에서 두말하지 않고 사기로 결정했지.
드디어 경매가 열리는 날, 시작하자마자 오백 원, 천 원하더니 금방 3천 원이 되어버렸지. 그때 군수월급이 70원이었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경쟁이 심한 것이었지. 잠시 숨을 고른 뒤, 다시 5천 원, 6천 원, 7천 원 하는 소리가 잇따라 나오자 경매장은 쥐 죽은 듯 조용했지. 신보가 ‘8천 원’하고 큰소리로 경매장의 조용함을 깨자, 웅성웅성 놀라는 소리가 났지만 곧 잠잠해졌지.
그때 나지막하지만 분명한 목소리로 ‘9천 원’ 하는 소리가 들렸어. 순식간에 기와집 한 채 값만큼 올라버린 것이지. 그러나 마음먹은 일은 하고야 마는 간송은 주눅 들지 않고, 신보에게 ‘1만 원’을 부르게 했지. 그것도 덤빌 테면 덤벼라 하고 패기 있게 부르게 했지. 경매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 그 순간 경쟁자도 단호한 목소리로 ‘1만 500원’하고 불렀지.
그러자 신보는 500원을 올려 부르고, 경쟁자도 500원을 더 올려 부르는 숨 막히는 경쟁이 다시 시작되었지. 순식간에 1만 4천500원까지 올랐지. 경쟁자가 한풀 꺾인 목소리로 ‘1만 4천550원’을 부르자, 신보는 낌새를 알아차리고 ‘1만 4천560원’하고 더 큰소리로 불렀지. 경쟁자는 더 이상 맞설 힘이 없어졌지. ‘1만 4천580원’하고 신보가 부르자, 경매는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지.
큰 기와집 15채를 살 수 있는 값으로 이 아름다운 병을 간송이 일본인에게 되사들인 것이지. 이렇게 비싼 값을 치른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은 시골 할머니가 참기름을 담아 팔던 병이었어. 우연히 일본 거래상이 보고 참기름 값에다 조금 더 주고 병째 산 것이지. 그때는 문화재를 보호해야 한다거나, 아니 문화재가 무엇인지도 잘 몰랐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흔하게 일어났지.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병, 높이 42.3cm, 입지름 4.1cm, 밑지름 13.3cm
자기 이름은 일정한 순서로 부여서 부른다. 이 병은 양각(돋을새김)으로 무늬를 그렸고, 난초와 국화가 있지만 이름이 너무 길어서 이런 부분은 생략하여 부른다.
이 병에 관한 것은 이미 아래 글에서 언급했으므로 읽어보시기 바란다.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이 그린 「촉잔도권」(蜀棧圖卷)
또 이런 일도 있었지. 현재 심사정(玄齋 沈師正, 1707~1769)이 그린 「촉잔도권」(蜀棧圖卷)이라는 8m가 넘는 커다란 그림을 5천 원 주고 간송이 구입했어. 한데 거의 망가지기 직전이라, 그대로 둘 수가 없었던 간송은 일본으로 그림을 보내서 고치게 했어. 그런데 고친 값은 6천 원이나 했지. 만약에 간송이 재산을 늘리려 했거나, 자신의 재산을 뽐내려 했다면 결코 할 수 없었겠지.
그러면 간송이라는 분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돈을 전부 그림 사는데 쓴 거야.
다른데도 썼겠지. 하지만 문화재가 나라밖으로 흩어지는 것을 막고, 오히려 흩어져 있는 것을 다시 찾아왔지.
그래! 왜 찾아왔는데?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훌륭한 문화재를 되찾아오기 쉽지 않지.
문화재는 꼭 돈으로만 사고파는 것이 아니야.
그래서 외국으로 나간 많은 문화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되찾아오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지.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글쎄 꼬맹이가 공부 많이 하고, 그 방법을 찾아내면 어떨까?
외국인 수집가에게 문화재를 모두 사들이다.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로 있었을 때 그림과 글씨는 약간 귀하게 생각했지만, 청자나 백자는 그저 밥그릇 정도나 되는 것으로 여겼지. 그래서 많은 훌륭한 도자기가 외국인에게 수집되고 있었지. 그중에서도 일본에서 사업하던 영국인 ‘존 갓스비’(Sir John Gadsby)는 우리나라 청자만 모으는 유명한 수집가였지. 그래서 그의 청자 수집품을 보고 싶어 하고, 사기를 원했지. 간송도 그랬어.
아주 오랫동안 기회를 엿보던 중에 갓스비가 모아 온 청자를 팔고 영국으로 귀국한다는 소문을 들은 간송은 바로 동경으로 갔지. 간송을 만난 그는 한국의 젊은 청년이 가지고 있는 당당함과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알고는, 자신의 수집품을 모두 간송에게 넘기기로 그 자리에서 결정했지. 나중 일이지만 그가 수집한 청자는 국보로 지정되었을 정도로 훌륭한 것이었지.
1부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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