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은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간송은 부친이 물려준 많은 재산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암흑한 수난에 맞닥트린 문화재를 모으고, 지키는데 평생을 바쳤다.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짓고, 보성고보를 인수하여 민족정신을 이어갈 교육현장을 지켜냈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비롯해 수많은 서적과 서화, 석조물과 자기를 수집하여 국보로 지정된 것만 수 십 점에 이른다. 최근 경복궁 낙서 테러와 함께 간송의 문화에 대한 사랑을 알아보기로 한다.
훌륭한 스승님을 만나다
왜 문화재 모으는 게 우리나라를 지키는 일이야.
나라를 지키려면 총이 있어야지.
그렇게 생각하니.
총이 있어도 지켜야 할 민족의 정신과 전통이 없어지면 총을 사용할 필요 없지.
마음에 민족과 나라가 없다면 지켜야 할 나라와 민족도 없는 것과 같은 거야.
문화재를 지키는 게 우리나라를 지키는 것하고 어떻게 같아?
춘곡 선생님의 말씀을 들은 간송은 눈과 마음이 환해졌지. 간송은 선생님을 만나서면서부터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어. 아무리 힘센 나라라고 해도 자신들의 문화와 정신을 지키지 못하면, 곧 힘이 약해지고 결국은 나라가 없어지게 되는 거야. 하지만 나라가 힘이 없다고 해도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와 전통을 굳건히 지켜나가면 민족은 없어지지 않지.
그래서 우리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기 위해서는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존해서,
우리 민족의 정신을 잃어버리지 않게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지.
위창 오셍창 스승님을 만나다
이런 결심을 굳힌 간송을 춘곡 선생님은 독립운동가이면서 학문과 예술감식이 뛰어난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1864~1953) 선생님에게 소개했지. 민족정신을 살리는 것은 문화재를 보존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던 위창 선생님은 우리 문화재가 외국으로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을 안타까워했지. 그래서 오래전부터 우리 문화재를 모아, 1910년대에 벌써 옛 글씨와 그림을 천 점이나 넘게 모으신 분이지. 이것을 바탕으로 해서 옛날의 유명한 화가와 서예가들을 시대 순으로 정리해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이라는 책을 펴내셨어.
위창 오세창 저, 근역서화징(1917년 편찬), 계명구락부 발행, 1928 발행, 324쪽(아래 주소에서 인용)
‘근역’이란 조선 즉 우리나라를 뜻하는 말이고, ‘서화징’란 글과 그림을 모았다는 뜻이야. 이 책을 1928년에 출판했는데, 바로 그때 위창 선생님과 간송이 처음 만난 것이지. 이 만남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깃든 문화재를 위해선 너무나 중요한 만남이었지. 마치 하늘이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것과 같은 일이었는지도 몰라.
그 뒤로, 간송은 방학 때면 어김없이 위창 선생님 댁으로 가 글씨와 전각을 배우고, 선생님이 모아놓으신 그림과 글씨를 보면서 공부했어. 그때 또다시 간송은 큰 슬픔을 맞이하게 되는데, 두 돌도 못 넘긴 큰아들의 죽음이야. 손자의 죽음을 슬퍼해서인지 다음 해에는 간송의 아버지도 돌아가시고 말았지. 이제 24살, 겨우 대학교 4학년이었지만 간송은 큰 집안을 이끄는 가장이었고,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도 있었기 때문에 슬픔에만 잠겨있을 순 없었어.
대학을 졸업하고 동경에서 돌아온 간송은 매일 위창 선생님 댁에 가서 공부를 계속했지. 간송은 한번 마음먹은 일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해내고 마는 성격이셨어. 하지만 그 일을 하기 전까지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하셨어. 그리고 하기로 결정한 일이면 포기하거나, 일이 잘 안 되더라도 낙담하지 않고 마무리지을 때까지 집중하는 그런 분이었지.
위창 선생님의 가르침에 따라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지만, 어려움이 많았지. 그때는 세력과 돈을 많이 가진 일본인들이 우리나라 문화재를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그들과 경쟁을 벌여야만 했지. 그래서 위창 선생님은 서화골동품을 직접 모아 올 정직한 거래상을 소개해주었어. 이순황이라는 아주 정직한 분이었는데, 간송도 이분의 성품을 믿고는 문화재 수집을 그분에게 완전히 맡기셨지. 이렇게 모은 문화재는 위창 선생님에게 보여 좋은 것은 사도록 하고, 아닌 것은 돌려보내고 하면서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수집하기 시작했어. 그리고 ‘한남서림’이라는 옛날 책을 모아서 파는 서점을 인수해서 이순황이 맡아서 운영하게 했지.
간송은 한번 믿는 사람에게 일을 맡기면 절대 의심하는 법이 없었다고 해. 문화재를 살 때도 달라는 값을 깎은 적이 없고, 오히려 주인이 물건을 잘못 알아 싼값을 불러도 간송은 자신이 적당하다고 판단한 값을 다 주었대. 이런 소문이 쫙 펴져 문화재를 거래하던 사람들은 좋은 것이 나오면 당연히 간송에게 먼저 가지고 오곤 했지.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문화재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몰랐어. 그림이나 글씨, 그리고 청자, 백자가 우리나라의 전통과 정신이 담긴 것인데도 몰랐던 것이지.
해악전신첩과 혜원전신첩을 구하다
간송이 문화재를 모으던 시절에는 아슬아슬한 일도 많았지. 시골에 다니며 옛 글씨나 그림을 구해다가 파는 일을 하는 사람이, 한 번은 용인에 있는 큰 기와집을 구경하게 되었대. 말을 탄 주인이 슬며시 나타나 무슨 일이냐고 물어, 집 구경한다고 대답했더니, 들어와 이야기나 하다 가라고 그랬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이 되어 하루 밤 자게 되었는데, 한 밤에 화장실을 다녀오게 되었대. 마침 그 집 머슴이 사랑채 아궁이에 불을 때는 중이었는데, 문서뭉치를 마구 집어넣고 있더래.
그래서 유심히 살펴보는데, 초록비단으로 정성스럽게 꾸민 책이 눈에 들어오더래. 그 순간 머슴의 손에서 책을 확 뺏어보니, 겸재 정선(謙齋 鄭歚, 1676~1759)의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 보물 194호)이었대. 하마터면 아궁이 속으로 들어갈 귀중한 문화재를 건진 이 거래상은 집주인에게 자초지종을 말하고는 자신이 샀대. 그렇게 산 화첩을 이순황에게 가져오니 간송은 두말하지 않고 그 화첩을 샀지.
정선의 그림을 모은 해악전신첩은 조선 후기 1747년(정선 72세 때)에 금강산 일대를 그린진경산수화를 모아 엮은 시화첩이다. 21점의 그림과 스승 김창흡과 친구 이병연의 제화시, 서문, 발문 등 50폭이 함께 장첩된 화첩으로 당시 문인들의 산수유람, 시화일치의 풍조를 보여주는 좋은 연구자료이다.
점점 귀중한 문화재를 모아 많아지자, 이것을 정리하고 보관할 곳이 필요하게 된 간송은 바로 여기(후에 간송미술관 자리)를 샀지. 그리고 이미 있던 2층 양옥 건물을 고쳐서 ‘북단장’(뒤에 보화각 이름을 가진 건물로 신축)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사들인 문화재를 보관할 장소를 마련한 거야. 또 한쪽에는 그림과 글씨를 표구하고 보수하는 곳인 한옥을 새로 지었지. 이렇게 모으고, 고치고, 보관할 장소가 생기니 간송은 문화재를 모으는 일에 더욱 열심을 다했지. 이렇게 모인 문화재는 오동상자에 넣고 위창 선생님이 그 경위를 써서 붙였지.
간송이 몇 년을 벌려 큰돈을 들여 사들였다는 「혜원전신첩」(蕙園傳神帖, 국보 135호)도 그중에 하나지. 흔히 ‘혜원풍속도(혜원(蕙園 申潤福, 1758~?)로 불리는 것인데, “세상은 혜원의 그림을 소중히 여기지만, 특히 풍속을 그린 것을 소중히 여기는데, 이 화첩에는 30면이나 되는 많은 양이 있다. 모두 옛 풍속인물화로서 일반생활 하나하나 모습이 종이 위에서 약동하니 눈부시게 큰 구경거리이다. …”라고 이 화첩을 구하게 된 과정이 쓰여있지.
흔히 '월하정인'(달빛 아래에서 만나는 애인)이라고 부르는 이 그림은 애틋한 혹은 은밀한 남녀의 만남을 상징하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풍속화이다.
화제로 '月沈沈夜三更 兩人心事兩人和 慧園'이라고 화면 가운데서 꺾인 담벼락 왼쪽에 쓰여있다. 뜻은 '깊은 한 밤중에(삼경은 밤 11~1시) 두 사람의 마음속 일이 화합했다 혜원'이라는 의미이다.
두툼한 두 사람의 복장이나 초승달이 누은 것으로 보나 한 겨울 깊은 밤에 두 연인의 마음이 맞아 몰래 만나는 장면을 아주 흥미롭게 그렸다. 신윤복, 월하정인, 비단에 담채, 28.3×35.4cm, 18~19세기, 간송미술관
아 그것을 여기에서 전시하는 거야. 그것을 보고 우리가 상상할 수는 거고.
그렇지! 바로 그거야. 우리 문화재가 없다면, 아니 볼 수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럼 나는 여기에 올 수 없었겠지. 그림도, 우리나라 역사도 볼 수 없고.
야, 우리 꼬맹이 똑똑한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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