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작품이 어처구니없는 스캔들(scandal)을 일으킨 경우는 수없이 많다. 이런 스캔들 다른 말로는 검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은 국내외에서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지난 3월 미국 미술평론가인 켈리 그로비어(Kelly Grovier)가 BBC에 기고한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과 스캔들을 일으킨 미술품 10점>(Michelangelo's David and 10 artworks that caused a scandal)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을 바탕으로 하여 어떤 일이 있었는지 소개하고자 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이 무슨 문제를 일으켰나?
플로리다에 있는 한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11~12살(5~6학년)학생들에게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보여준 르네상스 미술수업 이후에 일어났다. 다비드상과 함께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 보티첼리의 <비너스 탄생>도 수업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 작품들은 르네상스 시대의 중요한 예술작품일뿐만 아니라 동서양에서 누구나 아는 유명한 작품이다. 다비드 조각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 중에 하나인 골리앗을 쓰러트린 다윗을 묘사한 것으로 완전히 벌거벗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런 미술수업을 진행한 사실을 알아버린 한 학부모는 자녀가 음란물에 노출됐었으므로, 교장의 사임을 주장하여 결국 취임한 지 일 년 만에 강제로 사임하였다.
<다비드 조각>은 1501년부터 1504년까지 높이가 5.17m니 되는 옷을 완전히 벗은 대리석 조각상으로 미켈란젤로가 제작한 것이다. 이 작품이 발표되자 걸작으로 평가되며 르네상스 화가이자 최초의 미술사가인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는 다비드 조각은 이전에 존재했던 어떤 조각상보다 우월하다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외설이라는 끊임없는 비판을 들어야했다. 16세기에는 천박하다는 평가를 완화하기 위해 금속으로 만든 무화과 잎을 우스꽝스러운 형태로 허리에 걸쳐야 했고, 1857년 빅토리아 여왕에게 다비드 조각 사본이 기증되었을 때 런던의 빅토리아 & 앨버트 박물관(현재 V&A)에서도 무화과 잎을 제작을 의뢰했다. 이것이 제거된 것은 20세기 중반이 되어서이다.(자세한 내용은 BBC 기사 원문에서 볼 수 있다.)
켈리 그로비어(Kelly Grovier)는 플로리다 학교 이사회가 내린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정은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충격적 결정이라고 생각하지만, 현대에서 미술작품이 우리의 사고방식을 바꾸는 결정적 기회를 제공한 사례를 되돌아볼 좋은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다음에서 10개 작품을 차례로 알아보도록 한다.
1. 마크 퀸(Marc Quinn, 1964~ ), 셀프(Self) 시리즈
마크 퀸(1964~)은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캠브릿지 대학에서 예술사를 전공했다. 그는 영국의 젊은 작가라고 부르는 'yBa(young British artists)' 중에 한 사람이다.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를 비롯한 yBa 멤버들이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 출신이며 1988년 프리즈(freeze) 전에 참여하며 주목을 받은 반면, 마크 퀸은 이들과 대학도 다르고 프리즈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1997년 영국의 유명 컬렉터인 찰스 사치(Charles Saatchi)의 주도로 열린 '센세이션'(Sensation) 전시에서 <Self>라는 작품을 선보이며 yBa의 대표작가로 급부상하였다. <Self>는 자신의 두상 조각작품이며 작가 자신의 혈액 약 4.5리터가 사용하여 제작한 작품이다.
그는 6주에 한 번씩 자신의 피를 뽑아 5개월동안 4.5L를 모아, 1991년에 처음 <Self>를 제작했다. 투명 형태로 제작한 자신의 두상 형틀에 피를 붓어 냉동시켜서 만들었다. 두 번째는 1996년, 2001년, 2006년 이렇게 총 네 점을 제작했으나 두 번째 작품 <센세이션> 전시에 출품했던 작품은 찰스 사치가 소장했으나 청소부의 실수로 냉동장비의 전원 코드가 뽑히는 바람에 녹아내린 사라졌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이것은 첫 번째 작품 <1991년>의 작품 값을 올리기 위한 사치의 자자극이라는 소문이 있어 의혹의 눈초리를 받고 있다. 세 번째 작품은 우리나라 아라리오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다. 성인의 혈액량이 4~5 L 정도 된다고 하니, 한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피를 뽑아야 하는 것으로 5년마다 하나씩 만든 이유가 여기에 있는 듯하다.
켈리 그로비어(Kelly Grovier)는 일부 사람들이 마크 퀸의 <Self>는 소름끼치고 뱀파이어 같은 묘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하지만, 어떤 작가보다 더 많은 것을 쏟아부었다는 합법적인 증거(자신의 몸에 있는 모든 혈액을 사용했다는 점,즉 생명을 걸고 작품을 제작했다는 증거)를 가진 자화상 시리즈라고 평가한다. 또 렘브란트나 고흐, 신디 셔먼처럼 훌륭한 작가들이 자신의 존재의 취약성을 통렬하고 대담하게 표현한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주장한다.
2. 앨런 존스(Allen Jones, 1937~ ), 의자(1969)
앨런 존스는 1937년 영국 사우샘프턴에서 태어났다. 그는 왕립예술대학(Royal College of art)에서 퇴학당했는데 이유는 일반적인 교수법이 가진 규범을 부정하고, 자신들의 예술을 대표하는 자신들의 스타일을 발전시키자고 동료 학생을 종용했기 때문이다. 그의 동급생으로는 데이비드 호크니가 있다.
젊은 작가들 사이에 팝 아트라는 새로운 언어를 발견하던 시기인 1961년, 젊은 인재를 장려하기 위한 전시회인 <젊은 현대작가전 Young Contemporaries 1961>에 출품하여 주목을 받게 된다. 그의 예술에 대한 색다른 접근법과 관점으로 여러 갤러리이스트에게 찬사를 받으며, 앤디 워홀(Andy Warhol)과 클래스 올덴버그(Claes Oldenburg)와 같은 미국의 작가들을 소개받는다.
1960년대 후반 영국 팝아트 운동과 관현하여 앨런은 석판화, 회화, 드로잉, 조각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형태를 묘사하기 위해 색을 사용하거나, 생생한 정밀함으로 표현하거나 반대로 직접적인 표현에 가까운 자유로운 제스처로 에너지를 표현한다고 평가받았다.
1969년 런던에서 도발적인 가구 조각품으로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에로티시즘과 사도마조히스트(가학피학성애자)적인 테마로 여성의 모습을 마네킹으로 제작하고 이를 가구로 제시한 작품 <의자>, <테이블>, <모자걸이>를 완성한다. 이 작품은 영국에서 순식간에 유명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엄청난 비난에 휩싸이게 된다.
런던 현대미술관(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에 전시될 때까지는 이 작품들은 연막탄과 악취폭탄으로 공격받았지만, 1986년 여성의 날에 한 시위자가 테이트 브리튼(Tate Britain)에 전시된 <의자>에 페인트 제거물질을 들이부어 작품에 테러를 가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여성 마네킹의 순종적인 모습은 여성을 품위없고, 욕망의 대상으로 삼은 앨런 존스는 성차별주의자로 비난받았다. 또 사물을 여성취급하고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비난도 함께 받았다. 켈리 그로비어(Kelly Grovier)는 여성 마네킹을 비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교활하고 음란한 가구 세트로 변형한 것이 이런 비난을 일으켰다고 설명한다.(앨런 존스에 관한 더 자세한 기록은 이 블로그를 방문해보기 바란다.
이렇게 점점 미술이라는 영역이 확대되기도 하지만 여전히 고유한 영역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의 고유한 영역마저 부정될 날이 올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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