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 도로, 번쩍이는 자동차, 빠른 지하철이 있음에도 우리 삶은 바쁘다. 휴대폰이 없을 때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리는 전화를 받을 일이 없었다. 컴퓨터가 없을 때는 확인할 메일이 없었다. 첨단기술은 몸이 편한 세상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우리 정신을 한가하게 두지 않는다. 시골집 뒤 뜰에 난 대나무처럼 생긴 서정국의 조각작품이 생각난다.
옛날에는 시골집 뒤뜰에는 대나무가 있었다.
지금 시절에는 뒷문 마루에 맞닿은 손바닥 뒤뜰에 키 작은 대나무 잎이 사각거리는 소리가 서늘할 때이다. 높은 뒷산에서 소나무를 스치며 내려온 바람이 대나무 잎 사이로 들어와 뒷문 마루까지 오는 바람이 그랬다.
한여름에 먼 앞산에서 뻐꾸기 울음소리라도 들리면 그 작은 시골집은 낙원이 된다. 가을이면 달빛 사이로 흔들리는 뒤뜰 대나무가 보여주는 그림은 어떤 영화보다 재미있었다. 겨울밤에 대나무 잎을 스치는 찬바람은 차디찬 홍시를 더욱 으스스한 단맛으로 만들었다. 후덥지근한 도시의 공기는 어릴 적 뒤뜰에 키 작은 대나무가 만들던 계절의 소리를 그립게 한다.
서정국의 대나무 조각작품
서정국의 <대나무> 작품을 보면 키 작은 뒤뜰의 대나무를 보았던 어릴 적 추억을 끄집어내게 한다. 선비의 절개를 상징한다는 사군자 대나무의 권위보다는 뒤뜰에 볼품없이 자라던 그 시골집의 대나무를 떠올리게 한다.
서정국의 대나무 작품은 야시시한 가는 대나무에서 굵고 우직한 대나무까지 아무렇게나 만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대나무를 만드는 방식을 들여다보면 '이게 조각작품이야'라는 말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기다란 스테인리스스틸 봉을 대충 자른다. 그리고 적당히 다시 용접한다. 그리고 적당히 표면을 닦고 살짝 기름을 칠한다. 끝.
이게 그가 하는 전체 작업 과정이다.
간혹 아니 종종, 정말은 언제나 예술작품은 심오한 과정을 거쳐 만든다는, 만들어야 한다는 관념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예술은 우리들 작은 이야기이다. 우리 인생을 보여주는 방법이다. 만약 우리 인생이 언제나 깊은 사색과 고민과 염려와 진중함만으로 이루어진다면 아마 한 달을 지속할 인생은 많지 않을 것이다.
우리 인생은 즐거워야 한다. 행복하고 장난스럽고, 재치와 유머로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다가 가끔은 깊은 사색에 빠져들고, 걱정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다시 행복이란 감정에 기대게 한다. 아주 가끔 걱정도 하고 진중하게 자신의 인생을 고민한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다시 행복이란 제자리에 찾아오는 것이 바로 우리 삶이다. 우리 삶의 참은 바로 행복 찾기란 것에 있다.
행복이란 그렇게 심각한 것도 심오한 것도 어려운 것도 아니다. 우리 인생이 그렇듯 예술도 아니 미술작품도 마찬가지이다.
서정국의 작품은 전설 같은 미술작품 만들기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각이다. 그의 작품은 미술이란 예술 장르가 가져야 하는 원초적 의미를 잘 간직한 조각이다. 복잡한 도시에 사는 우리이게 아주 작은 풍경, 한 토막의 추억을 새겨내게 하는 임무를 다하는 조각이다. 변화에 몰두하다가, 세상일에 빠져들다 불현듯 떠오르는 즐거운 정감을 끌어내는 조각이다. 그러고 보니 작가의 감각이 새삼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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