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유명했던 광고 문구에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것이 있었다. 요즘에야 남자들도 화장하는 시대이니 변신은 무죄가 맞다. 20년 전에만 하더라도 어르신들이 '사람은 변하면 죽느니라' 하신던 말, 그건 맞는 말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변하는 세상에 화가에서 조각가로 변신한 조각가 문신은 멋있게 성공했다.
흔히들 오해하는 예술에 관한 생각
세상이 변한다. 예전에 영원할 것 같던 일들이 지금은 권위와 의미를 잃어버리고 흔적조차 없는 것들이 많다. 한결같은 것은 요즘에는 찾아보기 힘들고 그렇게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예술에 아니 더 좁게 말하면 미술작품에 관한 것도 비슷하다.
미술작품이 유일하게 창조성을 가진 영원한 생명체와 비교하는 신화 속에 둘러싸인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하던 때가 있었다. 예술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이라는 관념을 조장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은 고리타분한 것이 되었고, 현대는 예술도 미술도 튀어야 사는 세상이 되었다. 어쩔 땐 너무 변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면,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 그리고 내일의 태양은 다를 것이다.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영원 혹은 불변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것은 우매한 우리의 희망 상항일 뿐이다.
오직,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만 변하지 않는다.
화가에서 조각가로 변신한 조각가 문신의 작품
'조각가 문신' 이렇게 흔히 부르는 이유는 사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출발했기 때문이다. 화가로 꽤 알려져 있었고, 많은 이들에게 인정받았던 그가 어떤 계기로 변신하기로 작심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가 변신을 시작한 시기는 파리에 정착한 시기부터라고 알려져 있지만, 한 우물을 파야 한다는 당시의 관념으로는 모험이고, 파격적인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외국 작가들에게는 흔한 일이지만 말이다.
문신의 조각은 나무로 출발했다. 그리고 브론즈에서 스테인리스로 조각의 재료가 변신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한 주제는 초지일관했다. <우주를 향하여>라는 작품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형태이다. 심지어 한 번도 상상해 보지 못한 형태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문신의 조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형태이기도 하다. 어디서 인지는 모르지만 내 기억의 한편에 존재하는 형태인 것처럼 친숙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문신의 조각이 주는 매력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서 작품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미술이 가진 커다란 매력이다.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은 상식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은 믿음이고 확신이다. 누구나 보이는 것을 믿는다라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사실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면서, 눈앞에 사실을 두고도 믿지 못하면서 믿는다고 한다. 그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이다.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확신하는 것이다. 누가 자신의 성공을 믿지 못하면서 성공할 수 있겠는가. 문신은 보이지 않는 형태를 자신의 믿음과 확신으로 그것을 나무와 철로 만들어 냈다. 그의 확신과 믿음이 있음으로 해서 그는 성공한 조각가 문신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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