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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작가와 전시

흉악하다고 거부했던 철 구조물이 예술작품으로 전환된 에펠탑

by !))*!))* 2023. 10. 25.

어떤 일이 우리들의 의식을 바꿔버린 사실을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흉악하다고 거부했던 철 구조물, 보기 싫다고 외면받던 에펠탑은 현대문화의 상징이 되었고 예술작품으로 전환이 되었다.

 

 

 

에펠이 받았던 수모

1889년에 세워진 에펠탑이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을 바꿀 줄은 아무도 몰랐다. 프랑스가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개최하는 파리만국박람회 상징으로 세상없는 구조물을 만들려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진 산업기술을 과시하기 위해 높이가 300미터나 되는 황당한 철탑을 세우기 위해 현상공모를 했다. 여기에 700 : 1의 경쟁률을 뚫고 구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 18321923)이 제안한 설계안이 당선되어 만들어진 것이 에펠탑이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했어도 300미터나 되는 철탑을 세울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쓸데없는 철탑을 세우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엄청나게 많았다. 특히, 아름다움에 관해 일가견이 있는 예술가의 반대는 거셌다.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 그것도 파리의 푸른 하늘에 한 점의 수치가 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에펠은 에펠탑이 있어 프랑스는 3백 미터 높이의 깃대에 국기를 휘날릴 수 있는 유일한 국가가 될 것이다"라는 말로 반대자들을 설득했다. 이것이 프랑스가 가진 낭만인지, 문화의식인지 몰라도 이 이상한 논리에 설득당해, 결국 에펠탑은 파리 하늘에 우뚝 서게 됐다.

 

에펠이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들이대며 우뚝 세운 에펠탑은 누구나 한 번쯤 파리에 가서 보고 싶은 문화상징의 하나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프랑스의 아름다운 건축물과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수많은 예술품보다 더 사랑받는 탑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파리하면 루브르를 떠올리는 것과 함께 떠올리는 것이 에펠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다.

 

지금은 이렇게 사랑받는 에펠탑이지만, 세워진 그 당시에는 어디에서나 고개를 들면 보이는 에펠탑이 싫어 뒷골목으로만 다닌 미술가들이 있었다. 아예 에펠탑 바로 밑에 들어가 에펠탑의 존재 자체를 거부했던 문학가들도 있었다.

 

 

 

거부되었던 철 구조물에서 예술작품으로

에펠탑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가진 미()에 대한 의식을 변화시켰다는 것에 있는지 모른다. 아름다움에 대한 고정관념을 산산이 조각냈기 때문이다. 단순히 건축 재료에 하나인 철이 가진 새로운 가능성과 성질을 에펠탑이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철이 훌륭한 예술작품 재료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 것이다.

 

에펠탑에서 철 구조물이 뿜어내는 원초적인 힘을 느끼게 되었고, 기하학적인 아름다움에 많은 이들이 매료되기 시작했다. 이제 에펠탑은 단순히 박람회의 상징인 철탑이 아니라, 아름다운 미술작품으로 누구나 사랑하는 예술작품이 되었다. 에펠이 300짜리 국기 게양대로 쓸 수 있다는 웃기는 논리는 사라졌다.

 

예술이 뭐 특별한 것인가, 많은 사람이 감동하고 즐거움을 느끼고, 사랑하면 예술이고 작품이지!’

 

에펠탑이 세워지고 수십 년이 흐른 뒤, 철 구조물은 그렇게 싫어하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샘이 되었다. 앞다투어 에펠탑이 등장하는 소설과 그림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사걀(Chagall Marc, 18871985)창문을 통해 본 파리(1913)는 에펠탑이 있는 아름다운 파리를 바라보는 즐거움을 그렸다. 이처럼 에펠탑은 파리의 문화예술만이 아니라, 세계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문화상징물이 되었다.

사걀의 창문을 통해 본 파리 작품으로 1913년 제작함
사걀의 창문을 통해 본 파리,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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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상은 변한다. 나는 머물고 싶지만, 세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그렇다면 차라리 변화를 받아들이는 아니 변화하는 적극적인 삶이 더 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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