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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작가와 전시

조각가 권진규가 새겼던 글귀에서

by !))*!))* 2023. 10. 25.

조각가 귄진규는 아뜰리에 벽에 '범인에겐 침을 바보에게 존경을 천재엔 감사를...'라는 글귀를 적어놨더란다. 예전에는 무심히 넘겼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그 뜻이 비수로 다가온다. 범인들 속에서 손가락질당하며 침 세례를 받는 것도 모르며 하루하루를 사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예술에서 성공한 조각가 권진규 그러나 현실에선 실패였다.

이 글귀를 사랑했던 조각각 권진규는 1973년 5월 4일,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 나이로 치면 쉰둘이었다.

세 번의 개인전 기록과 '인생은 공, 파멸'이라는 마지막 글을 남김 권진규는 이 세상에 테라코타와 석고, 작은 돌로 만든 조각 등 겨우 수십 점만을 남겼다. 이 적은 숫자인 조각으로도 사랑하는 마니아가 있다는 것에 그의 영혼은 위로받을지도 모른다.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브론즈 작품들은 자신의 비극적인 삶을 암시하듯 어둡고 무언가 사색에 잠긴 인물상이다.

 

그중에서도 <남자흉상>은 보일 듯 말 듯 미간을 찌푸린 표정이다. 바깥으로 벌어진 귀, 우직한 코, 꾹 다문 입술이 작가 얼굴을 닮았다. 아니다. 내 얼굴을, 우리 얼굴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일에도 관심을 두지 못하는, 어디에도 열정을 보이지 못하는, 그래서 어떤 근육도 움직이지 않는 무표정한 얼굴을 한 범인에게 날리는 침 세례인지도 모르겠다.

권진규의 브로즌로 만든 남자흉상 조각
권진규 남자흉상 조각

권진규는 그의 뜻대로 죽어서 한국의 조각가로 이름을 남겼지만, 그의 인생은 실패였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의 자살은 현실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마저 포기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결혼 실패로 인한 좌절, 변화하는 세계에 소극적으로 대항, 예술에 대한 끝없는 열정과 애착이 소멸한 결과였을 것이다.  사슴이 지닌 여린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보려 했지만 세상은 그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강철 같은 가슴을 원했다.

 

 

 

그래도 우리는 조각가 권진규보다는 인생을 잘 버티고 있다.

권진규하면 떠오는 한 사람,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이중섭이다. 권진규와 이중섭. 한 사람은 조각가, 한 사람은 화가. 한 사람은 병으로, 한 사람은 스스로 생을 마감. 이중섭은 대중에게 익숙한 화가이다. 마치 예술가의 삶을 대변하는 본보기처럼 신비화되어 있다. 비록 대중에게는 덜 알려지긴 했지만, 권진규 역시 이중섭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이들은 '현실부적격자'였다.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내가 없으면 세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어떤 이는 세상이 내 뜻과 다르다고, 변하기 싫다면 최소한 저항마저 포기하고 만다. 어쩌면 우리들과 권진규는 같은 부류일지 모른다. 그래도 우리는 각자 인생을 잘 버티고 있다. 이점이 다르다.

 

어쩌면 세상은 강철 같은 가슴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얼굴에 있는 근육을 움직여 웃음과 패기와 열정을 보여주길 원하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세상의 변화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을 요구할 뿐이다. 이 저항은 세상을 서서히 변화시킨다. 그 변화가 우리 인생을 살만한 가치로 바꾸는 힘이 될 것이다.

 

'범인에겐 침을 바보에게 존경을 천재엔 감사를...'. 이 글의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하지만, 범인이게 침을 이라는 문구는 왜 이렇게 내 가슴에 비수를 꽂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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