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주제로 한 회화 작품은 많지만, 조각에서는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현대미술을 혼돈으로 빠트린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1887~1968)이 결혼을 주제로 제작한 작품이 있다. 그것도 유리, 알루미늄 등 여러 재료로 만든 것으로 조각이라고 하기에 애매하지만 말이다. 제목은 <일곱 명의 신랑 들러리에게 발가벗겨진 신부>이지만, 대개 <큰 유리(Grand Glass)>라고 부른다.
일곱 명의 신랑 들러리에게 발가벗겨진 신부라는 작품
상단과 하단으로 나눈 유리판에 상단에는 신부를 상징하는 물건이, 하단에는 신랑 들러리를 상징하는 물건을 유리판 사이에 넣어 구역을 나누었다. 우리의 결혼관습에는 신랑 들러리를 보기가 어려워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분명하게 이해하진 못해도, 가만히 쳐다보면 낯 뜨거운 장면을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이 작품은 1915년에 시작해서 23년까지 꽤 긴 시간에 걸쳐 제작되었다.
하지만 작가가 완성을 선언한 것은 더 이후의 일이다. 전시를 끝내고 수집가의 집으로 운송하는 도중에 유리가 깨지고 말았다. 작품이 파손되었으니 운송업자는 하늘이 노래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뒤샹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이 깨진 작품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일일이 깨진 유리를 하나씩 퍼즐 맞추듯이 붙여나갔다. 그는 이 작품에서 완성하는 방법을 몰랐는데 이런 방법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너무 기뻤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파손되유리를 붙인 작품은 다시 세상에 공개되었다. 무려 8년이란 세월이 걸렸다. 어떤 작가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자신이 낳은 아이라고 말한다. 그런 아이가 다쳤으니 얼마나 상심이 되었겠는가. 그렇지만 뒤샹은 낙심하지 않고 그 아이의 상처를 어루만져, 다시 건강한 모습을 되찾도록 온갖 정성을 다했다. 그것도 8년씩이나.
'레디 메이드'(ready made)라는 현대미술 용어를 탄생시킨 <샘>이라는 작품을 발표한 뒤샹은 새로운 형식으로 조각했다. 따지면 조각이란 무엇을 깎거나 덧붙여 만든 방법을 말하는데 이것은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새로운 용어가 필요했다. 현대미술과 조각은 이렇게 점점 형식을 넓혀가면서 난해지기도 하고 대중과 멀어져 가기도 했다.
이 가을에 뒤샹의 작품이 생각안 까닭은
왔는지도 모르게 가을이 지나가고 있다. 황량하게 부는 비바람이 떨어진 낙엽을 휩쓸고 지나간다. 차창밖에 이런 풍경이 괜히 우리를 감성적으로 만든다. 이 가을의 정취도 못 보고 올해를 보내는구나하는 서글픈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이마저도 가을이 주는 혜택이라고 위안해 본다.
떨어지는 낙엽에, 거리를 휩쓰는 찬바람에 괜한 계절의 상념에나 젖었더라면, 뒤생은 이런 고통의 시간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뒤샹이 벌인 갖가지 우스운 행적이 어쩌면 자신의 생에 대한 강한 희망과 열정을 숨기게 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가 말년에 서양장기 프로기사로 소일하면서, 젊었던 시절에 제작했던 작품을 재탕 삼탕으로 여러 미술관에 팔아넘기고 있을 때 많은 사람들에게 비웃음 샀다. 그러나 그가 남긴 마지막 유작이 있었다. 그는 그 작품을 자신이 죽은 뒤에 공개하도록 유언을 남기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사에 대한 마지막 그의 독설이었다.
이 그랜드 글라스는뒤샹의 사후에 복사본을 제작하게 된다. 이 복사본은 일본 동경대학교 미술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정교하게 복제된 이것은 또 다른 물음을 생산한다. 이것도 작품인가? 마지막까지 미술 관념에 도전하 뒤샹은 현대미술의 개척자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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