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영남이 11월 7일부터 서울 세빛섬 애니버셔리에서 '이 망할 놈의 현대미술'전을 열면서 언론사와 한 인터뷰가 실렸다. 그중에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에서 첫소리 계명을 예로 들면서 "음악에 비해 미술에 규격이나 규칙 같은 게 단 한 군데도 없다"라는 내용이 실렸다. 정말 그럴까? 미술엔 규격이나 규칙이라는 것이 없이 지금까지 존재할 수 있었을까?
조영남의 주장에 대한 단상
여기서 그의 작품에 관한 이야기나 전시회에 관한 어떠한 이의를 제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고, 전시회를 열 수 있다. 여기에는 어떤 자격도 경력도 필요 없다. 어쩌면 이런 활동을 대중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실행력을 누군가는 부러워할 일인지도 모르겠다.
대중가요계의 정상을 지켜왔던 작가는 미술을 음악과 비교하며 말했습니다. 작가는 "음악은 엄격한 규율에 속해 있고 전체가 수학적이며 과학적인 반면에 미술은 규칙이라는 게 없다"며 "가령 클래식에서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 '운명'에서 맨 첫소리는 계명으로 '도도도라', 그러니까 모든 악기가 동일하게 '따다다단'을 연주해야 한다. 그런 음악에 비해 미술엔 도무지 규격이나 규칙 같은 게 단 한 군데도 없다. 음악은 철저하게 룰이 정해져 있고 미술은 자유 그 자체"라고 전했습니다.
위와 같은 조영남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 동양에는 사혁(謝赫, 500~535년경)의 '고화품록'(古畵品錄)이 화가 품평서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화론이다. 대략 1500년 전에 이미 동양에서는 미술에 규칙을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이론이고 저술이다. 이런 일은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있었다. 조르조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가 '미술가 열전'( Le Vite de' più eccellenti pittori, scultori, ed architettori, 영어 제목은 Lives of the Most Eminent Painters, Sculptors & Architects)을 1550년에 처음 발행했고, 개정판을 1568년에 냈다. 이런 사례만 봐도 미술이 법(order 혹은 canon) 그러니까 규격이나 규칙을 만들고자 얼마나 일찍부터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사혁의 고화품록은 짧은 서문과 3~6세기에 활동했던 27명에 관한 짧은 평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문에 유명한 육법론(六法, 기운생동, 골법용필, 응물상형, 수류부채, 경영위치, 전이모사 )이 나온다. (이에 관한 논문은 다음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은 르네상스 시기의 피렌체(초판)와 베네치아(개정증보판)에서 활동했던 당대 작가들의 전기라고 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조수로도 일했던 경험이 있던 바사리는 피렌체 출신이라는 것에 큰 자긍심을 가졌던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으로 유명세를 타서 개정증보판을 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이 르네상스 시기의 미술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의 전문(영문)을 볼 수 있는 사이트가 있다.(관심 있는 분들은 다음 사이트에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https://www.gutenberg.org/ebooks/25326
혹시 '사혁'이나 '바사리'는 아주 옛날 사람이므로 동의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조영남이 비교 대상으로 삼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초연된 해는 1808이었다.)과 '자신이 하는 미술'(자신의 전시에 현대미술이라고 했으므로)은 잘못 선정한 것이 된다. 올바른 비교를 위해서는 선정된 대상이 갖는 기준이 비슷해야 한다. 비슷한 기준이라는 것 자체가 음악과 미술이니 아예 없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있다고 한다면 말이다.
감성적으로 혹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오류를 범한다고 하더라도 비교한다면, 적어도 하나의 기준이라도 세웠어야 한다. 가장 쉬운 기준은 '시대' 혹은 '시기'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생한 음악과 미술을 대상으로 삼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낭만주의를 연 베토벤이라고 평가받는 '운명'이라는 19세기 음악과 자신이 하는 21세기 미술과 비교하는 벌써 2백 년이라는 시간 차이가 발생한다. 최소한 적절하게 비교하려면 '현대음악'과 '현대미술'을 비교했어야 했다.
운명 교향곡의 계명을 언급했으므로 음계의 규칙과 법칙을 말하려고 한 것이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니까 음계의 법칙을 따르는 음악에는 규격과 규칙이 있지만 현대미술에는 없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현대음악에서는 반드시 이 음계를 지키고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없다. 음계를 파괴하고 불협화음을 시도한 현대음악은 없나 하는 물음이다..
백남준의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함께 활동하기도 한 전위음악가인 존 케이지(John Cage)의 음악(예를 들면 4분 33초)에는 음계는 없다. 백남준은 1959년 <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라는 퍼포먼스를 했는데 도끼로 피아노를 부수면서 나는 소래로 케이지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이후에는 케이지의 넥타이를 자르는 퍼포먼스도 했다. 존 케이지도 백남준의 이 공연에 대한 답례로 비슷한 행위를 했다. 얼마든지 조영남의 말하는 것과 다른 현대음악, 전위음악은 많다.
그래서 비교대상이 잘못 선정됐다는 말이다.
짧게 살펴보는 미술이 법(canon) 혹은 규칙(rule)을 만들기 위한 역사
우리가 상식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예술이라는 보편적 개념(완전하지는 않지만)이 성립된 것은 이삼백 년 전이다. 예술(art)이라는 말은 라틴어의 아르스(ars)에서, 아르스는 그리스어의 테크네(techne)를 직역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넓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흘러, 18세기쯤에 예술은 순수미술(Fine Arts)을 뜻하게 되었다 그제야 비로소 예술이라는 미술은 완벽하게 사회적, 문화적으로 인정받는 위치가 되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미술역사를 살펴보면 얼마나 많은 미술가들이 노력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스 말, 테크네는 원래는 물건을 만드는데 필요한 솜씨(skill)를 뜻했다. 솜씨에는 측량술, 변론술 등 폭넓은 개념이었다. 이렇게 법(canon)은 일을 솜씨 있게 하려면 따라야 할 것이 있고 순서가 있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하지만 영감이나 환상을 좇아서 만드는 것은 테크네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그리스 초기에는 뮤즈 여신이 촉발시켜 만들어진다고 여긴 '시'는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당연히 건축, 조각, 도자기 등은 테크네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 옛날 그리스 사람들도 따라야 할 규칙이 없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나 그리스가 인체비례론 혹은 비례론이라는 용어를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신전을 건축하거나 인체 조각을 할 때에는 그들이 만들어 낸 규칙인 비례의 미를 철저하게 적용하고 따랐다.
아테네 언덕에 있는 파르테논 신전도 밀로의 비너스에도 인체비례론이 적용되었다.
누구나 아는 8등신이라는 말이 여기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후에는 그리스 테크네라는 범주에는 건축은 물론이고 미술과 공예 심지어 과학까지도 속하게 되었다. (인체비례론은 로마 시대에 저술된 비투르비우스의 <건축십서>에서 처음 연구되고 집대성된다. 이에 감명받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유명한 드로잉을 그린다. 바로 <비트루비우스적인 인간>이다.)
이런 상황은 중세까지 이어진다. 그러다 정신적 수고가 요구되는 자율적인 예술(liberal arts)과 육체적 수고까지 요구되는 것은 평범한 예술(commom arts)로 나눈다. 자율적인 예술에는 문법, 수사학, 음악(화성학) 등이 포함되지만, 미술은 포함되지 못했다. 그러나 곧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우리가 모두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가 등장하여 미술을 사회적으로 엄청나게 높은 신분으로 격상시키게 된다.
그들은 인체비례론뿐만 아니라 선원근법, 색채원근법, 공기원근법이 정립되고 미술재료와 색채가 서서히 정립되기 시작한다. 다빈치가 과학자, 해부학자, 미술재료에 대한 연구를 했던 이유가 모두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의 개념 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가 교황청의 의뢰로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그리면서 사회적 신분은 급상승하게 되었다. 여기에 라파엘로 역시 <아테네 학당> 그림 속에 자신도 포함시켜 미술가를 아카데미 즉 학자의 일원에 포함시키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이어지는 노력들에서 미술이 오늘날의 예술 개념으로 서서히 정립되어 간다. 이후의 과정에는 아래의 글을 읽어보면 도움이 될 것 같다.
결론을 대신해서
거의 모든 일에는 법, 규칙, 규격은 있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자유가 강조되는 시대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분명한 선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어떤 범위까지 미치는가에 따라 다를 뿐이다. 다만 이 범위를 결정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이고 상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따라야 할 법과 규칙 같은 것을 세우는 것은 현대에서는 각자 개인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적용되는 범위와 법을 세우는 것은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인정되는 시대가 21세기인 것이다. 심지어 조영남 자신도 자신의 그림을 그릴 때 세운 규칙이나 법이 있을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을까. 자신도 모르게 혹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법이 있지 않을까.
각자가 세운 법은 공통적이지 않다. 이것이 당연하고, 인정할 수 있을 때 예술의 자유라는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충분히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하는 것에 누가 뭐라 할 이유는 없다. 그럴만한 자유는 21세기 지금 충분히 부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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