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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누가(왜) 그림을 사는가? - 왜 그림을 사는 거지 1

by !))*!))* 2024. 6. 26.

그림을 구입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작가들에게 생활을 유지하고, 또 다른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말하자면 예술가를 후원하는 일이다. 이런 행위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예술품을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고 있는 것이다.

 

 

 

1. 미술시장의 우화 하나

 

미술에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이라면  ‘스위스 바젤 아트 페어'(Basel Art Fair)를 들어봤을 것이다. 조금 오랜 된 이야기 하나를 하려 한다.

 

'스위스 바젤 아트 페어를 다녀온 후배에게 끝 맛이 씁쓸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 남자가 쓱 들어와 대충 그림을 보더니 “여기서 여기까지 15분 안에 포장해 주면 사고, 포장을 못하면 그냥 가겠다!”라고 묘한 제안을 하더란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제대로 이해 못 해서 어안이 벙벙해 있는데, 그 남자 “내 제안이 불쾌한가?”라고 묻더란다.

 

이 말을 들은 그 후배 정신을 차리면서 무어라고 했는데, 자신도 모르게 “예스”라고 했단다. 당연히 15분 안에 그림을 포장하기 위해 진땀 나는 난리를 쳤지만, 결국 그 남자에게 10여 점이 넘는 그림을 판매했단다. 그렇게 큰 액수는 아니었지만 외국에서 그것도 큰 아트 페어에서 그림을 팔았다는 사실이 뿌듯했다는 후배의 이야기를 들었다.'


친한 선후배들이 모이면 전설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인지 아니면 웃자고 한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여기서 여기까지 주세요!”라는 말 한마디로 간단히 그림을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저것 까다롭게 굴지도 않고, 더욱이 가격도 물어보지 않고…. 하기야 백화점이나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꼭 필요하고 쓸모 있는 물건만 사는 것은 아니다. 모양이 좋아서, 색깔이 멋있어서, 또 때로는 그냥 사고 싶어서, 눈앞에 있는 것을 산다. 그림 사는 일도 그다지 효용성 있는 일은 아니다. 대개는 쓸데없는 물건을 사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산다고 여기기도 한다. 맞는 생각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해야할 일을 바쁘게 해치우면서 산다고 생각하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쓸데 있는 일을 할까? 일상적인 전화에, 결론이 나지 않는 지루한 회의에, 수다 떨면서 차 마시고 난 뒤에, 쓸데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그러니까 쓸데없는 일을 하면서, 종종, 쓸데 있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회의가 든다.

 

누가 보아도 쓸데없는 일이라 말렸는데, 나중에는 그 일이 쓸데 있는 일이 되고 커다란 행운까지 가져다주는 묘한 상황을 겪게 되면 이런 회의는 깊어진다. 세상에는 아무 쓸데없는 짓처럼 보이는 것이 어느 순간에 커다란 부와 명예를 누리게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긴 제대로 따지면 시작부터 쓸데 있는 일이 얼마나 되기나 할까?

 

 

 

2. 쓸데없는 일로 세상을 바꾼 일


하늘을 처음 날았던 ‘라이트 형제’가 바람 생쌩부는 모래사장에서 자신들이 만든 비행기를 띄우려고 고생고생하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물었다. ‘하늘을 날아서 무엇하려고?’라는 물음에 라이트는 ‘그냥 날고 싶으니까!!’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쓸데없이 하늘을 날아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사람이 만약 지금, 수백 명의 승객과 엄청난 무게의 짐을 싣고 하늘을 나는 보잉 비행기를 보면 뭐라고 할까.


우리들 대부분은 쓸데없이 보이는 일들에 기를 쓰고 매달리며 갖가지 말로 정당함을 부여한다. 예술도 그중에 하나인데, 세계 어느 곳에나 있는 미술관․박물관이 그 증거이다.

 

과거의 삶을 살펴볼 수 있는 거울이 되는 훌륭한 지침서를 모아놓은 곳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미술관․박물관 존재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예술’이라는 적당하게 어려워 보이는 말로 그곳에 오라고 한다. 이 정도는 알아야 ‘문화를 안다’고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더라도, 미술관․박물관이 아니면 어디서 지나온 우리들 삶의 흔적을 볼 수 있을까? 만약에 예술이라고 불리는 갖가지 물건들이 없다면 과거의 우리 모습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아니, 이곳에 모아놓을 수 있는 예술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쓸데도 없는 그림을 포함한 예술품을 누군가가 사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진귀하고 아름다운 것을 모으는 일은 우리가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면서부터 생겨난 아주 오래된 버릇이다. 이런 버릇이 지속되면서 역사기록은 시작되었고, 수집된 많은 것들에서 어떤 비슷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라는 것 즉, ‘미적 취향’이라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미적 취향을 나름대로 알게 되면서, 아름다운 것을 더욱 더 다양하게 만들고 수집하려 했을 것이다. 작은 부분이었겠지만, 개인의 미적 취향을 충족시킬만한 물건을 사고파는 일도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예술이라고 불리기 이전부터 아름다운 것들을 사고파는 일은 역사가 기록한 것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상상은 충분히 가능하다. 쓸데없는 물건을 사고 판다고 핀잔받는 이런 일들은 지금도 누군가는 여전히 하고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중국은 긴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름다운 것들을 사고 파는 일을 어느 나라보다도 일찍 시작했다. 진시황제는 먼 이국의 진귀한 물건을 사거나 뺏거나, 또는 훌륭한 기술을 가진 장인들을 감옥에 가두어 놓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물건을 만들도록 명령했다고 전해진다. 대만에 있는 ‘고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것을 다 보려면 한평생이 걸린다는 말은 아름다운 것을 모으는 일에 얼마나 열렬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중국만이 아니라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1793년에 최초의 공공미술관으로 출발한 ‘루브르 미술관’을 비롯해서 세계의 유명한 국립 혹은 왕립미술관도 이런 상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도 조선 왕실의 소장품이 모태가 되어 설립된 것이다. 유럽이나 아시아의 박물관 중에서 왕실의 소장품을 모태로 해서 만들어진 미술관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숨이 가쁠 정도로 많다.


역사와 예술에 아무리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이런 미술관․박물관에 한 번쯤은 가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루브르에는 세계 각지에서 밀려드는 관람객으로 비명을 지를 정도이다. 수만 개에 이르는 세계의 미술관․박물관이 없다면 우리가 보고자 하는 수많은 그림과 예술품들을 어디서 볼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예술품 수집을 위해 비록 갖가지 우여곡절과 약탈의 역사를 가지고 있더라도 말이다.(그렇다고 이런 역사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모여진 예술품들은 다음 세대들에게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해서 또 다른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게 하고 즐기게 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일에 중심이 된 것은 ‘그림’ 즉 ‘미술’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 개인이 미술품을 수집하고 예술가들을 후원해서 한 시대의 문화를 꽃피게 한 경우는 많다. 그 대표로 꼽을 수 있는 예가, 15세기 이태리 르네상스 문화를 활짝 꽃피게 한 ‘메디치’ 사람들이다. 메디치 가문은 마치 가업처럼 미술을 포함한 예술과 학문에 대단한 후원을 했고 그 흔적은 ‘피렌체 미술관’과 ‘우피치 미술관’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3. 르네상스를 이끈 메디치 가문과 우리나라 예술을 지켜낸 간송 전형필


메디치 가문을 연 ‘죠반니 비치 데 메디치’(Giovanni Bicci di Medici, 1360~1428)는 은행업으로 막대한 부를 얻으면서, 1418년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1377~1446)와 ‘도나텔로’(Donatello, 1386~1466)에게 ‘싼 로렌쪼’(San Lorenzo) 성당의 내부설계와 조각을 맡기면서 시작된 문화예술의 후원은, 죠반니 둘째 아들의 손자인 ‘삐에르프란체스코’(Pierfrancssco)는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에게 『봄』과 『비너스의 탄생』을 주문했다.

 

이 그림은 우피치 미술관에 소중히 간직되어 지금도 엊그제 그린 것처럼 생생하다. 교황 레오 10세가 된 죠반니의 4대 후손인 ‘지오반니’(Giovanni, 1475~1521)는 당시에 가장 유명했던 조각가 ‘미켈란젤로’에게 동생 ‘줄리아노’와 조카 ‘로렌쪼’의 무덤을 제작하게 했다.

 

우피치미술관
우피치미술관 홈페이지

 

 

 

 

 

우리나라에서 미술대학에 가려는 고등학생이 적어도 몇 번은 그렸을 ‘줄리앙’이라는 석고상이 바로 이 무덤의 조각상이기도 하다. (이것도 이제는 예전 일이 되었지만) 혹자는 메디치 가문의 예술문화 후원은 정치적 의도로 이루어졌다고 비하하는 논문도 있지만, 돌이켜 보면 이런 의도조차도 없었다면 르네상스 시대의 아름다운 그림과 조각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다.  


성북동에 자리잡은 아담한 미술관이 하나 있다. 최근 새롭게 단장하고 재개관한 ‘간송미술관’이 그것이다.

 

이 미술관의 설립자인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은 우리나라 최고의 미술품 수집가였다. 그는 일제 강점기에 나라도 잃었는데 우리의 문화예술품마저 외국으로 팔려나가는 것을 보고, 자신의 거의 모든 재산을 털어 수많은 서화와 도자기, 불교미술품 그리고 서책을 수집했다.

 

1943년에 안동에서 당시 엄청나게 큰돈인 1만1000원을 주고 산 『훈민정음』 원본은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의 창제원리를 알 수 있게 했고, 『청화백자양각진사철채난국초충문병』(靑華白磁陽刻辰砂鐵彩蘭菊草蟲文甁)은 치열한 경매 끝에 거금을 들여 구입하면서까지 아름다운 청자 모습을 지켜낸 덕에 ‘보물 제241호로 지정되었다.


만약 간송이 수많은 문화예술품을 수집하지 않아서 모조리 흩어졌더라면 우리는 감당할 수 없는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것이다.

 

아래, 간송에 관한 글을 더 읽어보세요. 5편까지.

 

 

암흑한 수난에 맞닥트린 문화재를 지켜 낸, 간송 전형필 - 1부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 1906~1962)은 서울 종로구에서 태어났다. 간송은 부친이 물려준 많은 재산을 허투루 쓰지 않고 암흑한 수난에 맞닥트린 문화재를 모으고, 지키는데 평생을 바쳤다. 보화

red-pig-11.tistory.com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이 강화도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300여 책 「어람용 의궤」(儀軌: 왕실행사기록)류를 약탈해 갔다. 이 책은 현재 ‘파리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한때 프랑스 대통령이 반환하겠다는 약속 때문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책이다. 반환하다고 해 놓고서는 대여라는 형식으로 우리나라에 왔다.

 

그러고 보면 간송이 한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의미있는 일인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예술문화를 후원하고, 그림을 사는 일이 왕이나 귀족 혹은 많은 재산을 가진 계층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림을 사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자신의 월급을 조금씩 모아 마음에 드는 그림 한 점 사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간송이나 메디치가 사람들처럼 어마 어마한 돈을 써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화랑도 많고 미술관도 꽤나 있는데 우리 미술시장은 언제나 불황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미술시장이 있기는 하나?!’라는 말도 한다. 이 말은 우리 사정에 비추어 보면 턱없이 작아 없는 것과 같다는 자조로 하는 말이다.

 

이 작은 미술시장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일은 ‘왜 그림을 사는가’보다는 ‘누가 그림을 사는가’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이다. 이런 이상한 관심은 ‘어떤 정신 나간 사람이 쓸데없는 그런 것에 큰돈을 낭비하는지 모르겠다’라는 가난한 마음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미술 아니, 예술은 특정한 부류만이 소유하는 것이고,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자들의 몫이라는 척박한 문화의식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왜 그림을 사는가’하는 인문학적 주제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다만 누구의 그림을 누가 얼마에 샀는지 이름과 숫자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그림을 구입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스스로 확인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작가들에게 생활을 유지하고, 또 다른 작품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말하자면 예술가를 후원하는 일이다. 그림이 팔리지 않아 자신이 가진 천재성을 채 발휘하지도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난 작가가 얼마나 많은가. 만약 이중섭이나 박수근, 권진규가 조금만 더 삶에 여유가 있었다면, 보다 더 훌륭한 작품으로 우리들의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그림이 고흐와 피카소의 그림만큼 비싸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버드 대학에 다닐 때, 빈둥거리던 ‘빌 게이츠’는 우연히 잡지에서 PC(Personal Computer)라는 단어를 보고서 이것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직감이 들어 허름한 창고에서 자신만의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직감은 적중해서 세계에서 가장 빨리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컴퓨터 프로그램과 정보산업은 미술과 별 연관이 없을 것 같지만 빌 게이츠 개인적으로는 많은 사진 작품을 소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미술작품 구입에 많은 금액을 사용하고 있고, 자회사인 코르비스(corbis, 가치 있는 물건이 담긴 바구니라는 뜻을 가진 라틴어)를 만들어 이미지 복제에 대한 권리를 유명한 미술관으로부터 사들이고 있다.

 

박물관 루부르, 에르미따주, 런던 내셔널갤러리 등이 소장한 미술작품 1백만 개 이상을 1997년까지 디지털 형식으로 복제했고, 계속해서 이미지 사용권을 확보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복제 권리를 사들인 코르비스 회사는, 누구나 일정한 대가를 지불하면 개인의 취향에 따라 대형 평면 스크린에 투사해서 볼 수 있게 하는, 최첨단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위 이야기는 30여년전 신문에 기사로 나왔던 이야기이다. 지금은 너무나 흔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때에는 그런 게 가능해라고 의심했지만 말이다.

 

세상을 바꾼 이들은 생각도 남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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