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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나만의 안식처를 만든다! - 그림을 사려면 갖추어야 할 자세 6

by !))*!))* 2024. 6. 26.

그림 한 점, 책 한 권사는 여유, 문화를 즐기는 이유다. 책 한 권사서 읽는 여유를 부려야 한다. 그림 한 점 사는 일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 나만의 안식처는 물질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개성 있는 문화를 즐길 수 있을 때 진정한 안식처 아니 나만의 안식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폴 게티 센터를 세운 폴 게티

 

반 고흐의 「아이리스」를 소장하고 있는 미국 로스엔젤리스 말리부에 있는 ‘폴 게티 센터’(J. Paul Getty Center)는 '나폴리만의 헤르쿨라네움'에 있는 로마제국 총독 별장을 본떠 지었다. 로마제국 총독 ‘루치우스 칼푸루니우스 피소’의 별장은 기원 1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1800년대에 발굴작업이 시작되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을 정도로 규모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건물이다.

 

폴 게티 센타 전경
폴 게티 센터

 

 

 

 

로마시대의 화려한 이 건물은 거의 2천년만에 대서양을 건너 별장이 아니라, 미술관으로 재현된 것이다. 폴 게티 센터의 미술관은 겉모습에 어울리게 소장품도 그레코로만의 유물과 유럽의 그림과 드로잉, 조각을 주로 소장하고 있다.

 

 

인생의 불행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 - 빈센트 반 고흐

70년대 유행하던 맥클라인(D. McClean)의 빈센트(Vincent : Starry, Starry Night)라는 팝송을 한때 열심히 들은 기억이 있다. 겨우 알파벳 철자나 깨쳤던 실력으로 무슨 뜻인지 알리 없었지만, 괜히 마음을

red-pig-11.tistory.com

 


‘폴 케티’(J. Paul Getty)는 석유회사를 운영해서 벌어들인 막대한 부를 가지고 미술품 수집가로 활동했다. “20세기 야만인들은 예술을 감상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습득하지 않고서는 개화되고 문명화될 수 없다 “고 할 만큼 그는 예술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그런 만큼 독특한 자신의 취향대로 미술관을 세웠다.

 

자신의 취향을 “나는 게티 석유회사를 왕국으로…그리고 나 자신을 카이사르로… 견주는 것에 대해 어떤 거리낌이나 망설임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할 정도로 개성이 강했다. 그는 스스로를 로마시대의 귀족으로 여기는 바람에, 과대망상증을 가진 사람으로 은근히 비난받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취향을 결코 남의 이목 때문에 굽히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벌어들인 부를 가지고 그림과 문화재를 사들이고 미술관을 세워서, 자신의 왕국을 현실로 만들어 세상 사람들에게 돌려주었다.

 

자신의 취향이 허무한 망상증이 아님을 증명한 것이다. 그는 가진 자의 책임(noblesse oblige)을 다하고 떠난 미술품애호가였다. 아니, 폴 케티는 자신만의 안식처를 위해 거대한 미술관을 만든 철저한 이기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폴 게티의 손자가 유괴되자 몸값 지불을 거부하면서 납치범과 흥정 끝에 깎고 깎아 손자를 석방시켰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영화 '더 머니 인 더 월드(All the Money in the World)'를 보아도 흥미로울 것이다.

올 더 머니 포스터

 

 

 

문명이기가 현대인을 더 바쁘게 만든다


현대는 산업과 과학문명의 이기로 편리한 생활과 여유를 누리게 했지만, 그만큼 또 다른 일에 시간을 들이고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는 세상이다. 현대문명의 대표적 산물인 컴퓨터는 정보를 저장하고 언제든지 찾을 수 있게 만들었다. 사무를 획기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일을 빨리 처리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하는 일의 양은 늘어났다.

 

인터넷은 세상의 정보를 마치 내 것인 양 생각하게 했지만, 언제 전자편지(E-Mail)가 올지 몰라 책상 앞을 떠날 수 없게 만든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대는 휴대폰은 우리 신경을 잠시도 쉬지 못하게 한다. 간혹 휴대폰 벨소리를 듣지 못해 못 받으면 면박받기 일쑤이다. 항상 휴대폰을 가지고 다녀야 한다는 생각은 때때로 스트레스이다. 휴대폰 소리를 구분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모인 곳에서 휴대폰이 울릴라치면 자기 휴대폰을 서로 들여다보는 풍경을 연출한다. 장례식장에 어울리지 않는 노래가 휴대폰에서 나올 때 민망함이란 겪어 본 사람은 안다. 완벽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문명의 이기가 발달한 만큼 줄어들었다. 현대문명의 ‘이기’(利器)는 따지면 ‘해기’(害器)이다.


요즘은 한창 ‘웰 빙’(well bing) 바람이 불고 있다. 먹는 것, 입는 것, 운동하는 것, 그리고 건축자재에도 유해물질이 나오지 않는 것을 사용한 아파트를 찾고 있다.

 

얼마 전에는 ‘코쿠닝’(cocooning: 누에고치(cocoon)처럼 보호막 안으로 칩거하려는 현상)이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예전에는 집에서 가족과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음식을 배달시켜서 먹는 것이 편해서였지만, 지금은 무서워서 집에 머문다. 이런 현상을 코쿠닝이라고 한다.


현대는 잘 정돈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불안시대이다. 뉴스는 사고와 사건으로 채워지지 않는 날이 없다. 며칠마다 일어나는 사건은 우리 감각을 무감각하게 만든다. 차마 입에 담기조차 엽기 같은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 이런 일들은 자신의 안식처마저 믿지 못하는 정신분열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마음과 몸을 진정으로 편안하게 해 줄 더욱 안전하고 견고한 안식처를 찾는지도 모른다. 웰 빙이나 코쿠닝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완전히 자신을 보호하려는 심리 혹은 현상들을 일컫는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모든 신경을 이완시킨 채,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잠시라도 있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나 해보았을 것이다.

 

현대인의 이런 심리는 심해지면 심해졌지, 쉽게 사라질 것이 아니다. 누구나 마음 둘 곳을 찾으려는 것은 본능이다.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것도 본능이다. 하지만 진정한 몸과 마음의 안식은 순간적인 만족이나, 맛있는 음식과 가구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물질로는 자신의 안식처를 만들 수 없다. 


어느 친구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유독 그 집이 기억에 남는 것은 화려하다거나, 넓은 평수 때문이 아니었다. 아주 정갈하다 못해 결벽증이 있는 사람들 집처럼 정리가 되어 있었다.

 

아들 녀석이 장난치던 공이 소파 밑으로 굴렀는데 그 밑을 들여다보고 ‘정말 깨끗하네’라는 생각을 하면서, 꺼낸 공을 쳐다보았다. 역시, 먼지 한 점 붙어있질 않았다. 그러고 이리저리 살펴보니 안방, 주방, 거실 할 것 없이 완벽했다. 호기심에 화장실까지 쓱 들여다 보고는 ‘무지하게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집이 더 기억에 남는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림 한 점이 벽에 붙어있질 않았고, 책 한 권이 없었다. 물론 책장이나 책꽂이도 없었다. 아무리 깨끗한 것이 좋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책 한 권이 없을까 하는 생각에 내 눈은 탐정이 되었다.

 

하지만 두어 시간 있는 동안에는 찾을 수 없었다. 그림이야 한 순간에 보이는 것이기에 없는 줄 금방 알았지만, 책이 없다는 것을 알고는 그 부부를 다시 쳐다보았다. 집에 소설책 한 권, 잡지 한 권이 없다니, 이 집에서 텔레비전 보는 것 외에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식탁에서 밥 먹고, 침대에서 잠자는 것 말고는 이 집에서 할 일이 없을 것 같았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집주인의 안목과 문화에 대한 태도를 한 순간에 나름으로 평가하는 것은 악취미이다. 아쉽게도 이런 악취미를 행사할 수 있는 집이 그렇게 많지 않다.

 

그림 한 점, 사진 한 장 걸려있지 않은 집은 물론이고, 책 한 권 제대로 꽂힌 책꽂이가 없는 것을 보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미니멀이 좋다고는 해도... 

 

진정한 안식처는 거실과 안방이 깨끗하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물론 몸이 쉬는 곳은 깨끗하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마음의 안식처는 깨끗하다고만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삶에 열정을 느끼게 하는 것,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곳이어야 완벽한 안식처가 된다. 물론 밖에서도 이런 일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책 한 권 없는 그림 한 점 없는 삭막한 집이 진정한 안식처가 될 수는 없다.


진정한 안식처를 갖는다는 것은 먼저 마음을 변화시켜야 한다. 태도를 변화시켜야 한다. 그림 한 점 걸어 놓고 온 가족이 모여 각자의 느낌을 말할 수 있고, 들어줄 수 있는 집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안식처의 모습이다.

 

아빠, 엄마가 책을 읽으면 아이들도 그 옆에서 책을 읽는다. 엄마가 텔레비전에 빠져있으면 당연히 아이도 빠지게 된다. 나만의 안식처는 말로만, 생각으로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림을 한 점 사는 여유, 책 한 권사는 여유, 그런 마음의 여유가 문화를 즐기는 여유다. 책 한 권사서 읽는 여유를 부려야 한다. 그림 한 점 사는 일이 어려워서는 안 된다. 나만의 안식처는 물질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다양하고 개성 있는 문화생활을 즐기고 그것을 함께 할 수 있을 때, 진전한 안식처 아니 나만의 안식처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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