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레스트 등정에는 반드시 셀파(Sherpa)가 동행한다. 위험에 빠지지 않고 안전하게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이다. 1953년 에베레스트를 처음 등정한 ‘힐러리’도 셀파 ‘텐징’이 있어서 가능했다. 그만큼 안내자는 중요하다. 그림 사는 일도 이와 같다. 그런데 좋은 안내자를 찾는 일을 마다하거나, 심지어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미술품 수집 중독가 이야기
아는 미술품수집가 중에 그림 사는 것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집이나 사무실에 모든 벽이나 공간에는 어김없이 그림이나 조각이 놓여있다. 그러고도 성에 찾지 않는지 엄청나게 많은 숫자의 미술품을 한꺼번에 산다.
그리고 나서, 작품을 걸 장소가 없으면 비바람 맞는 건물 외벽에도 그림을 건다.
꼭 들어맞는 비유는 아닌 것 같지만,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서 이름 모를 작가의 유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렇게 그림이 걸린 것을 보면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미묘한 느낌이 밀려온다.
처음에는 그림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게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 많은 그림과 조각 중에 좋은 작품 아니 제대로 된 작품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많은 조각과 그림 중에서 눈에 띄는 그림이 없다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수집가에게는 좋은 안내자가 없었다. 신뢰할 만한 화상을 만나지 못하기도 했다. 아니 못 만난 것이 아니라, 스스로 거부했다. 그저 자신의 눈만 믿고 누구의 말도 믿지 않았다. 주위에서 아무리 말려도 고집스럽게 샀다.
화상이라고도 할 수도 없는 그 못된 이의 말만 들으며, 그것도 가격을 후려쳐 대량으로 트럭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이 수집가는 말이 수집가이지 수집가가 아니다. 물건을 모으는 취미. 그렇다 한꺼번에 대량으로 물건을 사는 고집, 그것도 미술품이나 조각 이런 것만 산다. 다른 것에는 엄청나게 절제한다. 허투루 돈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이상하게 쓸데없어 보이는 이런 물건은 보이면 닥치는 대로 산다.
훌륭한 수집가 옆에는 좋은 선생과 중개인이 있었다.
국보와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수십 점을 소장한 간송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은 우리 문화재에 대해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안목만 믿지 않고, 당시 최고로 탁월한 감식안을 지닌 ‘위창 오세창’(葦滄 吳世昌, 1864~1953)에게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하여 열심히 배웠다. 그리고 많은 글과 도자기에 대해서.
오세창은 근대에 제일가는 서예가이며 전각가였다. 그리고 부친과 자신이 수집했던 풍부한 서적과 고서화․금석탁본 등을 토대로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편찬하는 등 우리나라 서화연구에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전형필은 이런 오세창을 스승으로 모시고 많은 것을 배우고자 했으며, 문화재를 수집하면 반드시 오세창에게 감식을 부탁했다.
암흑한 수난에 맞닥트린 문화재를 지켜 낸, 간송 전형필 - 1부
* 전형필에 관해서는 다섯 편에 걸쳐 작성한 글이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순황’이라는 정직한 거간(중개인, 지금으로 말하면 화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을 내세워 시중에 돌아다니는 훌륭한 문화재를 모았다. 이들 도움이 없었다면 간송은 결코 훌륭한 문화재를 모을 수 없었다.
이처럼 훌륭한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좋은 안내자가 있었다. 그들은 에베레스트 등정 성공에도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셀파'와 같다.
그러나 여전히 **기업이나 **단체들은 그때그때 경영자나 단체장 안면을 세워주기 위해 미술품을 구입한다. 이들의 면을 세워주고 문화 활동이라는 허울로 미술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이런 일마저 많이 줄어들기는 했다.)
다시 말하면, 경영자의 친목과 안면을 세우기 위하여 그저 문화 지원은 체면치례 용이다. 그래서 어떤 그림을 구입할 것인지 계획도 예산도 없다. 주먹구구식으로 일회성 행사로 끝내고 만다. 따라서 안내자도 필요 없다. 하지만 친목은 다져지고 체면은 세워질지 모르지만, 상황이 바뀌면 그때는 미술을 욕한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말이다.
돈 주고 산 작품이 다시 돈으로 환산될 것이라는 착각
가정해 보자.
회사가 어려워지고, 심각해지면 여러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누군가 그때 산 미술작품을 떠올리고 그것을 팔자고 제안한다.
어느 단체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단체장이 샀던 그림이 쌓이기 마련이다. 온전한 단체라면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소재불명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상황이 바뀌었고 상상해 보자.
일단 그림을 어떻게 파는지 모른다. 그래도 알음알음으로 아는 화랑이나 한국화랑협회 등을 찾게 된다. 기록도 없으니 얼마 주고 산 작품인지 작가에 대한 정보도 거의 없으니 이들에게 매달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도 어찌 방법이 있을 턱이 없다. 작품감정이나 가격에 대한 감정을 요청하면 한국화랑협회는 당연히 기본적인 정보 즉 작가이름과 작품정보 구입금액과 사진을 요구할 것이다. 그래야 어떤 작품인 최소의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거기에 맞추어 감정위원에게 의뢰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된다. 이미 위에서 언급했지만 거의 정보가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감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불평할 것이다. 대개, '팔 때는 비싸게 팔고서 되팔 때는 왜 그렇게 값이 없느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림이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비싸지는 것이 아니냐. 이러면 누가 그림을 사겠냐'고 심한 말까지 서슴지 않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잘못 알고 있다. 착각하고 있다. 그림이 사기만 하면, 시간이 가기만 하면 값이 오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상식이다. 그러니까 오해인 것이다. 그림이 땅도 아니고 건물도 아닌데, 값이 반드시 오른다는 예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 믿음을 갖는 것이 순진한 것이다. 음식점에 들어가서 주인에게 ‘맛있냐’고 물어보는 것과 같다.
모든 그림의 값이 상승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안내자가 필요한 것이고, 눈 높이를 위해 공부가 필요하고 안내자가 필요한 것이다.
미술시장에서 그림은 상품이다. 상품은 이미 팔리고 나면 그 값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왜 그림만 예외라고 생각하는지 이것 또한 이해할 수 없다. 그림에 감가상각비도 있을 리 없고, 고정비가 드는 것이 아닌데, 왜 값은 떨어지는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그림을 이미 선택한 그림은, 값이 오를만한 것을, 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경영자의 체면치례나, 단체장의 안면 때문에 그림을 샀기 때문이다. 이것은 투자가 아니다. 물론 우연하게 좋은 그림을 샀을 수도 있지만, 대개는 그렇지 않다.
설혹 자신의 안목에 들어서 산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그림 값이 올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문제는 있다. 스스로 좋아서 선택했다면, 그림을 걸어두고 보는 동안은 행복감 혹은 만족감을 얻었을 것이다. 자랑도 했을 것이다. 자신이 산 그림을 볼 때마다 가슴이 뿌듯했을 것이다. 이런 것을 얻었다면 충분하다.
이런 만족감은 아무리 많은 돈을 주어도 살 수 없다.
그림 값으로 따져 손해봤다고 주장하는 것은 계산이 틀린 것이다.
개인 미술품 애호가들에게도 이런 면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믿는 것이라고는 친구의 말이다. 미술시장에서 누가 이 그림 가지면 너도나도 할 것이 가져야 한다는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의 풍토가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흔한 속담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알려주어야 한다. 그림을 사는 일도 같다. 아무리 남들이 좋다고 해도 자신의 눈높이에 어울리지 않으면 좋은 그림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이 가진 것은 나도 가져야지 하는 심리는 한참 잘못된 것이다. 누가 나랑 똑 같은 색을 가진 옷을 입고 있다면 기분 좋을 리 없다. 그림도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한다.
친구가 가진 그림을 나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의 개성이 없다는 말과 같다. 누구나 개성을 찾으면서 말이다.
그림을 즐기려면 즐기는 법을 배워야 하고, 좋은 선생을 만나야 한다. 좋은 그림을 사려면 정직한 안내자를 만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가져야 한다.
겉모습만 문화인이 되어서는 결코 진정한 미술품애호가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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