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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강아지도 자기 밥그릇은 있다! - 그림을 사려면 갖추어야 할 자세 1

by !))*!))* 2024. 6. 13.

그림을 사고 싶다면 필요한  자세가 있다. 옛날 대식구로 살던 때를 생각하면, 밥 먹을 때 조용했지만 눈치코치를 최대한 사용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를 빗대어 그림을 사려고 할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 비유해 보려 한다. 앞으로 몇 부분으로 나누어 게재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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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밥상

 

호족반, 조선시대, 느티나무, 29 × 44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족반, 조선시대, 느티나무, 29 × 44 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무튀튀한 옻칠이 된 작은 소반이 있습니다. 그 위에는 아침상이 차려져 있습니다.

 

하얀 사발에는 김이 오르는 하얀 쌀밥이, 옆에 놓인 탕기에는 기름이 동동 뜬 미역국을 담았습니다. 또 옆에는 황금빛 놋쇠로 만든 숟가락과 젓가락이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보시기에는 빨아간 배추김치가 소복이 놓고, 낮고 기다란 접시에 노릇노릇 구운 굴비 한 마리를 놓았습니다. 그 옆 작고 하얀 종지에는 짙은 간장에 참깨 몇 개가 떠있습니다.

 

소박하지만 정갈한 아침 밥상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어릴 적 시골 할머니가 차려주신 밥상을 기억하며)

 

 

 

 

뜬금없는 비유라고 여길지도 모르겠다.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 아침 밥상을 받으려는 간 큰 남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아침 밥상을 보기만 해도 황송한 생각이 들어야만 할 것 같은 지금의 생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과 수십 년 전에는 할머니, 어머니가 정성 들여 차려주신 이런 밥상에 모여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그때는 부족한 것도 많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수고와 정성이 많은 것으로 메우던 시절이었다. 지금에야 깨닫는 것이지만 눈으로 보는 모든 것이 아름답던 시절이기도 하다. 뒷산은 물론이고, 마을 앞 작은 논을 지나서 있는 조그만 시내도 그림 같았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밥 먹는 것조차 재미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예전의 아침 밥상은 세련된 색의 조화가 있는 멋있는 그림이었다. 국그릇과 밥그릇은 백자인 흰색, 붉은색 김치와 초록색을 가진 여러 나물, 그리고 옻칠을 한 소반까지 한데 어우러진 즐거운 그림이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여러 색으로 구성된 아름다운 추상화를 감상할 수 있었다.

 

이런 까닭에 우리 눈은 아름다움을 가려낼 줄 아는 능력을 갖추었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뜬금없이 아침 밥상을 들먹거린 것은 이 능력을 상기시키기 위해서다.

 

백자의 흰색과 소반의 짙은 밤색은 어느 추상화보다도 절제미가 뛰어난 색채 대비이다. 군더더기 하나 없는 추상화다. 김치의 빨간색과 짙은 간장에 동동 떠 있는 참깨 색은 생동감을 준다. 눈을 확 끌어 입맛을 돋우고, 하루를 활기차게 시작하게 하는 색이다. 거기에 황금색인 기다란 숟가락과 젓가락은 없어서는 안 될 색 배치이다.

예전의 아침 밥상은 완벽한 추상화였다.

 

지금은 사라진 아침 밥상 풍경이 그립지만, 더 아쉬운 것은...


이제는 이런 아침 밥상은 거의 사라졌다. 그보다 더 불만인 것은 요즘 나오는 그릇이다. 색도 화려하고 무늬도 다양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정이 가지 않는다. 모양새도, 무늬를 그린 것도, 색도, 어디 하나 빠지지 않고 완벽해 미덥지 못하다.

 

요즘 그릇은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 잘났다고 뻐긴다. 그릇이 가져야 하는 소임을 잊고 있는 것이다. 또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진 그릇은 똑같다. 밥그릇이 네 개, 사발이 네 개로 된 가족용 그릇을 사면 네 개가 어디 하나 틀리지 않고 같다. 구분할 수 업다. 비싼 그릇일수록 더 그렇다. 

 

그래서 요즘 밥그릇은 네 것, 내 것 구분을 할 수 없다. 자기만의 밥그릇이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요즘 그릇은 싫다. 밥이 많이 담으면 아버지 밥그릇이 되고, 적게 담으면 아이들의 밥그릇이 된다. 그릇에 담긴 양에 따라 누구의 밥그릇인지 결정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강아지도 자기 밥그릇이 있는데 내 밥그릇은 없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일상에서는 아버지, 어머니, 아이들 밥그릇이 구분되어 있었다. 집에서 사용하는 그릇은 대개 백자였는데, 모두 손으로 만든 것을 썼기 때문에 똑같은 형태와 색을 가진 그릇이 없었다. 서양식으로 그릇이 몇 개로 이루어진 세트(Set) 개념이 없었기에 필요에 따라 한 두 개씩 시장에서 샀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피면 색도 다르고, 모양도 약간씩 서로 달랐다. 그래서 분명하게 네 것, 내 것이 정해져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식구가 모여 밥을 먹어도 언제나 자기 밥그릇은 정해져 있었다. 어른들은 숟가락, 젓가락마저 정해져 있었다. 누구도 할아버지, 아버지 밥그릇을 넘보지 않았다. 우리의 식사문화였고 예절이었다. 지금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사라진 아침 밥상 풍경이지만 여기서 그림을 사려면 갖추어야 할 자세를  깨달아야 할 점은


아침도 챙겨먹기 바쁜 시간에 네 그릇, 내 그릇 찾을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면 대답은 궁색하다. 하지만 서로의 그릇을 갖는다는 것은 그만큼 서로의 역할을 존중한다는 의미와 같다. 이게 무슨 구시대적 발상이냐고 피잔을 줘도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시골에서 할머니와 함께 살았을 적에 할아버지 밥그릇은 누구도 손을 댈 수 없었다. 목말라 아무 그릇이나 들고 물을 떠 마시려 하면, 할아버지 그릇인 줄 안 할머니는 다른 그릇에 물 떠서 내밀었다. 할아버지가 늦는 날에도 어김없이 할아버지 밥그릇에는 밥을 담아 가마솥에 넣어두셨다.

 

말은 하지 않으셨지만 마음으로 위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셨던 것이다. 서로의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하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아침 밥상에서는 그릇을 챙기기 위해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눈썰미 없이 그릇을 혼동했다가는 아침 댓바람부터 야단맞기 일쑤이다. 몇 번 이렇게 당하고 나면 절대 혼동하지 않는다.

 

아무리 오래 동안 집을 나갔다 돌아와도 자기 그릇과 남의 그릇을 헷갈리지 않는다. 옛날의 우리 가족은 조그만 차이라도 놓치지 않고 서로를 구분했다. 어릴 때부터 훈련받은 덕분에 안목을 키운 것이다.

 

바로 이런 안목으로 그림을 보면 된다. 그릇을 구분하던 예리한 눈으로 말이다.

 

밥상의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보던 그런 눈으로 그림을 보면 '그림을 모른다'라는 소리를 할 수 없다. 보이고 느끼는 대로 말하면 훌륭한 감상이 된다. 이런 안목으로 그림을 사면 자신의 눈높이를 자랑할 수 있다. ‘내 눈높이는 이 정도야’라고 젠체해도 옆 사람들은 수긍한다. 옆 사람이 수긍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개성은 드러난다.

 

 

 

 

그림을 사는 것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림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독창적인 개성이 있어야 한다. 남들이 해놓은 것을 다시 하는 것은 예술이 아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고 수집하는 것을 따라 해서는 자신만의 안목도 드러낼 수 없고 개성도 드러낼 수 없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미술시장에서 미술품애호가들은 서양화만을 고집한다. 작가를 둘러싼 학벌이나 인맥이나 혹은 안면으로 그림을 평가하고 수집하려 한다. 젊고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그림은 보려 하지 않는다. 조각이나 도자기, 금속공예나 목공예 미술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소문만 듣고 누가 잘 나간다더라라는 말만 듣고 갤러리나 경매장을 기웃거린다.

 

미술품애호가는 남들이 걸려고 하지 않는 그림도 과감히 벽에 걸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그림이나 유물을 모아 자신만의 개성을 만드는 데 성공한 수집가는 많다.

 

쇳대박물관장인 최홍규도 남들이 관심 두지 않았던 쇠붙이를 모아 박물관을 만들었다. 박병래는 문방구류만 모아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성문종합영어의 저자인 송성문은 고인쇄 자료들만 모았다. 그는 국보 4점과 보물 22점이 포함된 자신의 소장품을 아낌없이 기증했다.

 

모두 남들이 돌아보지 않던 것들을 자신의 안목과 개성으로 지켜낸 것이다. 그들의 안목과 눈 높이가 새삼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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