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을 사기 위한 지침서에 쓰인 말이 아니다. 그림을 알려면 손이 아니라, 발을 움직여야 한다는 말이다. 좋은 그림을 갖으려면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따지면 부동산이나 그림을 사는 일은 같다. 제대로 좋은 작품을 구입하려면 일단 많이 봐야 하고 그것도 컴퓨터 화면이 아니라 전시장 벽에 걸린 작품을 봐야 한다.
어떤 전화 (가상으로 대화를 만들어 보면)
“저기요, 팜플렛 5페이지에 있는 그림 얼마인가요?”
“잠깐만요…, 00백만원입니다.”
“그래요, 8페이지에 있는 것은요.”
“얼마입니다.”
끝까지 가격만 물어본다.
“거기 화랑이죠”
“네”
“오늘 **신문에 나온 그림이 얼마인가요”
“얼마입니다.”
“어느 정도까지 깎아 줄 수 있나요”
???
아마도 이렇게 노골적으로 전화로 문의하면 대책이 없을 것이다. 아무리 능숙한(?) 화랑이라도 말이다.
팸플릿도 아니고 선명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신문에 난 그림을 보고 사겠다고, 그것도 다짜고짜 깎자는 말부터 하는 전화를 받으면 우리 수준이 이 정도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 것이다.
한가한 화랑에 전화를 걸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관심이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정중히 답변을 하기는 할 것이다. 그림을 직접 보지도 않고 사겠다는 데야 말릴 이유는 없다을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만 가치를 따지려 하는 데는 배금주의를 보는 것 같아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마음으로, 안목으로, 좋은지 나쁜지 생각해 보고 미술작품을 사도 늦지 않다. 이렇게 전화로 문의하는 경우, 두 번 세 번 거는 경우가 없다. 결국 사지 않는다는 말이다.
인터넷 시대에 웬 발품을 팔아야 한다고?
인터넷 시대에는 발품보다 손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고 하지만, 그림과 부동산에서는 예외다.
* 이번 179회 서울옥션에서(2024.06.26 16:00)는 서초구 반포동 오피스텔인 The Place 73 by Richard Meier가 경매에 나온다고 한다. 부동산도 이제 미술경매장에 나오는 시대이기도 하다. 기사로는 160억이 예상 추정가라고 한다.
부가설명에는 인테리와 가구, 조명 등은 리처드 마이어의 예술로 구현된다는 홍보문구가 있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발달해도 그림을 완벽히 재현할 수는 없다. 설사 그렇게 된다 하더라도 직접 눈으로 보는 감동만큼은 만들어 낼 수 없다. 영화관에서 많은 사람이 동시에 보는 것과 집 혼자 앉아서 비디오로 보는 것과는 감동의 차이가 다르다.
영화관이라는 현장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림도 같다. 아무리 잘 인쇄된 사진이라고 해도 그림과 화랑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분위기와 그것이 주는 울림은 인쇄할 수 없다.
그래서 눈을 높이고 안목을 다듬기 위해서는 부지런히 다녀 발품을 팔아야 한다.
미술작품도 실내에서 그려진 것이 아니다.
미술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림도 작가 작업실에서만 그려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쿠르베의 사실주의가 나오기까지는 그림은 아는 것 즉 지식(성경 이야기까지도)을 그리는 것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집트 미술은 사물을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일정한 법칙에 따른 인물만을 그리고 만들었다. 몸통과 눈은 정면으로, 얼굴과 발은 옆모습을 그리는 원칙은 수 천년 변하지 않았다. 이런 ‘정면의 법칙’은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아는 대로 그렸다는 증거이다.
그리스미술도 아는 대로 그리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신의 모습이 인간을 닮았다는 지식을 가지고 조각을 했다. 인간보다 훨씬 크고, 골격도 다르게 표현했지만 그리스인은 자신들의 지식에 따라 아름다운 조각을 만들었다.
밀로의 비너스가 8등신이 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진정으로 보이는 대로 그린 그림은 19세기에서야 등장한다.
그 이전에 그려진 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의식하고 의도적으로 보이는 것만을 그려야 한다는 사실주의는 쿠르베에 의해 처음 주장되었다. 그의 그림의 주제가 된 노동자, 하수구, 장례식 등은 현실에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인상파도 쿠르베의 사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산업혁명으로 갖가지 편리한 물건이 등장한 시기에 유화물감도 편리하게 튜브에 담긴 물감을 상점에서 살 수 있었다. 들고 다니기에 가볍고, 편리한 이젤이 나왔다. 캔버스도 주문만 하면 가져다주고,, 크기도 규격화되어 쉽게 상점에서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뉴튼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표하고, 태양광선에 아름다운 색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과학과 산업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던 시대가 바로 인상파들이 활동하던 시기였다.
19세기의 사회적, 과학적 변화는 인상파들에게 그림을 보이는 대로보다 더 보이는 대로 그리도록 부추겼다..
그들은 태양광선이 품고 있는 모든 색을 그대로 보여주려고 했다. 인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즉흥적이고 순간적인 감정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각의 변화를 기록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인상파 그림은 보는 그림이 아니라, 이해해야 알 수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인상파 그림을 이해할 수 없었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을 비난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마티스의 ‘야수파’나 피카소의 ‘입체주의’도 이해하는 그림의 범위에 넣을 수 있다. 마티스는 색이 대상에 미치는 영향을 그림으로 표현하려 했고, 입체주의는 한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본 것을 한 장면에 그려 넣었다.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면 피카소 그림은 별 감동을 주지 못하는 그림이 된다.
이 사실을 알고 제대로 이해하면 피카소가 얼마나 천재화가인지 알 수 있다. 물론 예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그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생각을 자신의 그림에 담아낸 것이다. 비록 이런 생각이 처음이었던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또 하나 위대한 피카소라고 말하는 이유는,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이 생각한 것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20세기 미술이 생각한 것을 어떻게 화면에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만든 것이다. 미술에 새로운 화두를 던진 것이다. 그래서 뜨거운 추상, 차가운 추상과 다다(DaDa) 그리고 초현실주의는 이런 고민으로 탄생한 미술사조이다.
그림은 더 이상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려지는 것이 아니다. 아는 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 생각한 대로 그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발품 파는 일이 중요한 이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지 않고, 그림을 아는 것처럼 떠들거나 행동하는 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었다.
화랑에 있는 팸플릿은 그림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수단일 뿐이다.. 작가에게는 기록을 남기기 위한 수단임에 더 의미가 있다. 그림은 제대로 보지 않고, 팸플릿을 먼저 펼쳐보는 관람객은 자신의 눈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작가의 이력이나 명성으로 그림을 평가하려는 심리가 그런 행동을 만드는 것이다.
하물며 전화로 그림을 보고, 이해하고 사려는 것은 정말 아니다.
외국 여행을 가면 대부분은 그곳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들르기 마련이다. 언제 또 와서 볼 수 있겠는가 하는 심정이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책으로 그림을 봐도 직접 눈으로 마주치는 것만큼 감동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아 그곳 안에 있는 서점에서 책을 사들고 나오는 것이다.
눈으로 직접 보았던 감동을 책을 통해 되새기기 위한 것이다.
그림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미술품애호가가 되기 위해서는 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많이 보면 눈이 생기고, 눈높이가 생기는 것이다.
건성건성이 아니라, 꼼꼼히 보고 머리에 새겨야 한다.
그림이 말을 걸어줄 때까지 끈질기게 기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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