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보는 것일지 모르지만, 작품은 읽어야 한다. 아니 그림이든 작품이든 소설이든 시든 심지어 영화도 읽어야 하는 예술이다. 1999년 매트릭스(The Matrix)가 개봉되었을 때 보기만 이들은 SF영화로 알았다. 하지만 제대로 읽은 이들은 25년전에 현재의 시대를 예견했을 것이다. 보는 것과 읽는 것의 차이는 이런 것이다.
20년 전 취직 면접장에서 있었을 것같은 상황
“취미가 무엇입니까?”
“저어 독서입니다.”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에…, 저…, 소설도 읽구요, 가끔 시도 읽습니다.”
“취미가 뭐예요”(남자)
“독서예요”(여자)
“그래요, 저랑 똑같네요”
“어머 무슨 책을 주로 읽으세요”
“저는 주로 소설을 읽어요, 무협소설요”
“저는 연애소설을 좋아하는데…”
취업 면접 때나 미팅할 때에 나올만한 상황을 대충 나름으로 구성한 대화이다. 요즘은 면접도, 미팅도 갖가지 방식으로 변했지만,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서 상대방에게 ‘좋아하는 게 무엇이냐?, 취미가 무엇이냐?’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용하게 사용된다.
뿐만 아니라, 생활기록부(요즘에는 정부 24에서도 유치원, 초중고 생활기록부를 발급받는 세상이 되었다), 입사해서 처음 작성하는 개인 신상카드, 심지어 인터넷 사이트에 회원 가입 난에도 취미나 혹은 관심분야를 묻는다. 심지어 인터넷 회원 가입하려면 직장인이냐, 사업가냐, 프리랜서냐 등등 시시콜콜한 것을 묻는 경우도 있다.
세상이 많이 발전해 취미가 많이 다양해졌다. 예전에 흔하던 ‘독서’나 ‘음악감상’, ‘그림감상’은 많이 사라졌다. 가끔은 영상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영화감상’, 혹은 SNS를 한 두 개쯤은 하는 세상이 되었다.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은 안 하면 안 되는 일이디어 취미를 넘어선으로 보이기도 한다.
취미는 대상이 가지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이다
‘취미’(taste, 趣味)는 원래 ‘미각’(味覺)을 뜻했지만, 어떤 대상이 가지는 아름다움의 가치를 판정하는 능력을 뜻하는 말로 변했다. 임마뉴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어떤 대상이 우리의 인식능력에 적합하게 받아들여서 좋거나 혹은 나쁘거나 한 감정(快․不快)이 생겨날 때 ‘자연의 주관적 합목적성’이라는 원리가 적용된다고 했다.
이 원리는 어떤 대상을 인식해서 그것이 자신의 욕구와 일치하면 생기는 감정이 ‘쾌’, 불일치하면 ‘불쾌’라는 감정을 판단할 때 작동한다.
어떤 대상과 내가 동일하게 여겨질 때 순수 우리말인 「아름답다」를 쓰이게 하는 원리가 자연의 주관적 합목적성인 것이다. 따라서 대상과 내가 동일하게 여겨질 때, 나답다고 생각될 때 ‘쾌’의 감정을, 반대로 나답지 않아 하며 일치하지 않을 때는 불쾌의 감정을 판단하는 능력이 바로 ‘취미’인 것이다.
그런데 취미는 직감적이면서도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의 주관적 감정에 따라 판단되므로 각양각색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는 취미는 가지가지, 취미에 대해서는 논쟁할 수 없다는 말에서도 각 개인의 판단에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개인의 취미는 시대와 민족과 지역에 따라 차이를 드러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일정한 시대나 민족에 공통되는 취미가 분명히 존재하게 마련인데 예를 들면, 고려시대의 청자나 조선시대의 백자가 그 시대 사람들의 공통 취미를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취미가 무엇이냐 묻는 질문에는 ‘여가 시간에 무엇을 하고 보내는가’라는 뜻도 있지만, ‘당신은 무슨 일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것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가’라는 숨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당신 관심은 어디에 있느냐를 묻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책 읽기의 중요함은 시대가 따로없다.
취미가 무엇이냐는 묻는 상대의 마음 속에서는 당신 취미의 수준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다가 ‘제 취미는 독서’라고 대답한다면 그 사람은 분명히 취업이 안될 것이고, 미팅에서도 상대에게 딱지 맞을 것이 분명하다.
책 읽기는 취미가 아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책은 항상 곁에 가까이 두고 언제든지 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손에서 놓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꼰대 같은 말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나폴레옹’이 전장에 나갈 때 마차에 많은 책을 싣고 다녔다. 컴퓨터 바이러스 연구소를 운영했고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안철수’는 바둑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바둑을 배운 경위가 재미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이 바둑을 두는데 재미있어 보여 자신도 배우기로 작정하고 바로, 바둑판을 산 것이 아니라, 서점으로 달려가 바둑에 관한 책을 열 권 이상 샀다고 한다. 바둑에 대해 전혀 몰랐던 그는 책 내용이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몇 번이고 읽고 난 뒤에는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바둑에 심취했다고 한다. 바둑을 두지도 않으면서 단지 책을 읽으면서 바둑에 빠졌다는 그의 글을 읽으면서 바둑을 잘 둘 수밖에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읽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다. 그리고 책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켰다고 말하는 사람도 많다. 책 읽기는 모든 일에 기본이다. 어떤 일을 하기 위해서는 판단하기 위한 정보가 필요한데, 그 일은 책 읽기부터이다. 책은 과거의 지식을 저장해 놓은 기록 보관소이면서도 미래를 내다보게 하는 지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
얼마 전 문화관광부에서 우리나라 국민들의 국어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예상외 결과가 나왔다. 국어실력이 가장 뛰어나야 할 것 같은 중․고등학생이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고,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계층은 30대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책을 가장 안 읽는 세대는 10대이고, 가장 많이 읽는 세대는 30대라는 것이다. 다양한 분야의 책을 골고루 읽어야 할 시기에 제한된 교과서와 참고서 때문에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이나 단어실력이 형편없어진 것이다.
이런 예는 얼만든지 있다. 사흘이라는 말을 4일로 알 문해력이 문제라는 뉴스도 있었고, '삼가다'라는 용법도 모르는 이들이 많다.
꽤나 열심히 그림 보러 다니는 친구가 있다. 그림 보는 눈이 꽤나 있다고 은근히 자랑까지 한다. 옆에서 보기에는 별로인데 말이다.
한 번은 슬쩍 미술에 관한 어떤 책을 책 읽었냐고 물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번에는 아예 미술에 대한 기본적으로 읽어야 할 책제목을 대면서 물었지만, 대충 보기는 봤다고 말하지만 책표지조차 구경 못했다는 것을 느꼈다. 은근히 심사가 꼬여, ‘그런데 왜 그림은 열심히 보러 다니냐?’고 하니까, 그 대답이
“책은 왜 읽냐! 그냥 보기만 하면 되는데”.
2024.06.26 - [기타] - 일개미 Z-4195 - 왜 그림을 사는 거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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