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해던 대로 김구림 작가의 도록 문제는 원만히 해결되지 못했다. 6개월이나 열렸던 전시 개막에서부터 있었던 불협화음이 마지막 소음은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을 도록문제로 형사 고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내용은 훼손된 이미지로 도록이 발간되어 작가의 명예를 훼손하여 동일성 유지권을 침해당했다는 주장으로 형사 고소한 것이다.
지난 합의에도 불구하고, 결국 법으로 해결하기로...
“국립현대미술관 도록이 작품 왜곡” 김구림 작가의 분노… 결국 다시 찍는다(2024.4.3. 한겨례신문 기사)고 보도된 이후 두 달 여만에 결국은 국립현대미술관은 공소를 당했다.
지난 과정에 대한 과정은 아래 글을 읽어 보시길 바란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결국 김구림의 도록을 다시 찍는다고 합니다.
미시(좁쌀) 소견으로 이 문제를 바라볼 때
먼저 드는 생각, 언제부터 대한민국은 일이 생기면 법원에 달려가는 나라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니 법에 호소라도 해야겠다는 순진하면서 일차원적인 생각은 당연하다고 여겨졌다. 아주 오래전에는 말이다. 오죽하면 고소했을까라는 말이 너무나도 당연했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어떤가. 거의 모든 사고와 사건만이 아니라 아주 작은 불만도 법원 달려간다. 언제부터 우리가 법을 맹신했는지 모르겠다.(그럴다고 법원이 법을 잘 지킨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이런 칭찬은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언제 그런 말을 들었는지 기억도 없을 정도이다. 말도 안 되는 칭찬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직하게 산다는 것을 인정해 주는 것 같아 그리 나뿐 기분이 들지 않는 말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런 문제로 고소까지 지나치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서로의 입장이 완전히 다른다는 것을 인지하고, 문제를 대하고, 사건을 인식하고,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작가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을 알리는 방법을 민감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특히나 김구림 작가 같은 경우 행위미술 경우는 더욱 그럴 수밖에. 요즘이야 매체나 도구와 방법이 다양하지만, 예전에는 사진이나 인쇄 말고는 뭐가 있었나.
그러니 김구림 작가에게는 평생의 도록이 중요할 이유가 충분하다. 더욱이 우리나라 미술기관에서 당연히 최고 높은 기관(?, 말도 안 되는 표현이긴 하지만)이라고 여기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전시를 했으니...
그런데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이 전시를 담당한 기획자 혹은 학예사나 디자이너, 편집자 등은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타의 전시처럼 하던 대로 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김구림 작가에게만 특별하게 무언가를 했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작가들이 도록을 제작할 때 마음가짐과 태도와 다르게 대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상대는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나는 내가 하던 대로 하면 된다는 약간은 안일한 자세로 대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상대방이 생각하는 만큼 중요하게 생가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여러 일 중에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대했을 것이다.
김구림 작가와 국립현대미술관이 이 문제로 갈등한다고? 아마추어만 있나요?
다시 말하면 국립현대미술관이 소홀히 도록을 제작하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기존에 해왔던 대로 다른 작가와 형평성을 맞추어 진행한다고 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사건(신문에 난 기사로 미루어 보건대)으로 이런 추측이 충분히 가능하다. 최근 나온 기사에 국립현대미술관이 낸 보도문을 읽어보면 이런 추측이 틀리지 않다.
그래서 애초부터 다른 시점으로 접근해서 발생한, 아니 발생할 수밖에 없었던 문제였다.
그래서 전시를 기획할 때부터, 도록제작을 기획할 때부터 아주 면밀하게 연구하고 기획하고 작가에게 제시하여 확실하게 설득해 충분히 납득을 할 수 있게 설명했어야 했다.
처음이 중요했고, 상대방은 나와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를 대할 것이고, 그렇다면 나도 그에 준하는 마음을 갖추었야 했다.
이런 자세가 바로 프로 자세이고 전문가의 자세이고, 일 잘하는 자세이며 마음가짐이다.
우리 국공립미술관에서 일하는 학예사, 대다수는 그렇진 않겠지만, 자신의 배움만을 맹신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책에서 학교에서 배우는 학예 일은 극소수일 뿐이고 역사일 뿐이다. 외국에서 유학했다면 더욱 그렇 수밖에 없다. 그것도 누군가의 시각으로 정리한 역사이다. 그것이 온전히 미술문화의 전부라고 할 수 없다.
현장은 완전히 다르다. 지식을 뽐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미술문화를 이해할 수 있고 좋은 전시를 도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 자세였다면 일어나지도 않았을 문제로 모두가 불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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