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8일 국립현대미술관과 김구림 작가와의 갈등에 대하여 신문 기사가 나왔다. 갈등 중심에는 지난해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회고전인 '김구림 도록'에 있다고 한다. 작가의 주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이 제작한 도록은 도판 상태가 원작을 훼손하는 수준이므로 이를 고쳐 다시 발간해 달라는 것이고, 미술관은 협의를 거쳐 발간한 것이므로 유감이라는 것이다.
갈등의 내용, 서로 상이한 주장들
김구림(경북 상주, 1936~ ) 작가는 한국 실험미술의 1세대 작가이다.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임에도 그동안 연구가 부족하고 감상할 기회도 충분하지 않았다는 명분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이 회고전으로 <김구림> 대규모 전시를 2023년 8월 25일부터 2024년 2월 1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개최했다.
언론에 나온 기사 몇개를 종합하면, 이번 갈등에는 전시도록이 중심에 있다. 김구림 작가는 "2월 초 국립현대미술관이 발간한 회고전 도록에 실린 도판이 자신의 동의도 없이, 시커먼 바탕 색조를 입히는 등 실제 작품의 색상과 전혀 다르게 나왔으며, 이런 식으로 100점 이상의 수록 작품들이 실상과 달리 어둡고 왜곡된 상으로 인쇄됐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도록 재발간을 요구하고 관장 면담을 요청했으나 외면당했고, 상부기관인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실에도 문자메시지를 보내 시정을 촉구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도록은 인쇄 전에 세 차례나 작가 쪽에 실물 교정지를 보내 승인을 받았다. 그리고 배경색을 확인했음에도 의도적으로 작품이 잘 안 보이게 했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고 반박했다.
이런 갈등을 계기로 김구림 작가는 "저는 곧 이 나라를 떠나기로 했습니다. 대화조차 안 되는 이 땅에서 더 이상 발붙이고 작업할 의욕이 없어요"라고 하면서 서울 종로구청과 추진해 온 평창동 작업실의 작가미술관 건립안을 백지화하고 작품 500여 점을 기증하려는 것도 취소한다고, 3월 28일 기자간담회에서 밝혔다.
갈등은 쌍방의 인식 혹은 수용의 수준이 다르기에 일어난다
다시 한번 갈등에 대한 내용을 요약하면, 작가는 자신과 협의도 없이 도판 배경을 어둡게 하여 원작을 훼손했다. 흑백으로 준 교정지 때문에 확인할 수 없었다는 것이고,
반면에 국립현대미술관은 칼라로 된 교정지를 세 차례나 제공하여 모두 협의하였고, 배경색은 출품작은 배경 없이, 출품하지 않은 작품에는 어둡게 배경을 하기로 협의했다는 주장이다.
더 간단히 말하면, 김구림 작가는 충분히 협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국립현대미술관은 협의를 했으며 모두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이 문제일까?
상식으로 생각하면, "그게 문제가 되나" 하며 의아해할지 모른다. 서로 주장이 다르다면 한쪽은 거짓말인데, 거짓말을 하는 쪽이 잘못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갈등이라는 것의 발단은 똑같은 수준으로 상황을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즉, 갈등은 쌍방의 인식 혹은 수용의 수준을 다르기에 일어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언제나 명확하게 의사를 전달하고 그것을 수용하는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완벽하게 의사, 의견이 일치되는 것이다. 미진하다고 생각되면 두 번, 세 번 확인을 해야 갈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그런데 갈등이 발생했다는 것은 동일한 수준의 의사소통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한쪽은 한 번 더 생각해 보자는 식으로 부드럽게 표현한 것을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답을 들었으니 그대로 진행된다고 인식한 것이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일상적인 일에서는 이런 일이 보통이다. 하지만 계약이나 중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상황에서는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다.
통상적인 관점으로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비용을 들여 도록을 발간하더라도 작가에게 의견을 구하고 승인을 받는다. 승인이라기보다는, 이렇게 하려고 하는데 어떤 의견이 있는지, 정중히 동의를 구하는 것이 관례이다. 왜냐하면, 도록은 작가에게 중요한 자료이고, 그것은 기록물로 오랫동안 유통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그것이 중요한 미술의 역사로 기록될 수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상황에 따라 작가는 예민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사항이기도 하다.
공립미술관 그것도 국립미술관이 발해하는 기록물인 도록, 자신의 일생을 회고하는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을 기념하는 도록이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작가가 생각하는 중요도와 국립현대미술관이 생각하는 중요도의 차이에서 발생한 갈등이라고 보아야 한다.
누구의 말이 틀리다 맞다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 동일한 의식 수준에서 회고전을 받아들였는가가 문제인 것이다.
이미 갈등은 전시 시작 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전임 국립현대미술관장 시절부터 매년 원로작가를 초대하여 대규모 회고전을 개최하기로 한 기획전으로 열린 김구림 회고전은 당초 예정시기보다 수년이 연기되었고, 전시가 임박했음에도 담당 큐레이터가 바뀌면서 전시 준비가 엄밀하게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몇몇 미술판에 있으신 분들 이야기를 귀동냥한 정보로는)
노(老) 작가는 여기서 이미 불편한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곤 전시는 2023년 8월 25일 시작되었다. 그런데 김구림 작가는 하루 전날인 24일 회고전 김구림 전을 앞두고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불만을 드러냈다. 자신이 해온 일생의 미술작업을 인정받는 잔치가 열리는 하루 전날에 불만을 표출한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라는 곳이 이런 곳인 줄 알았더라면 나는 이 전시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 것이다.
대한민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자신의 개인전을 여는 하루 전날 많은 기자들이 모인 기자간담회에서 "아방가르드한 작품은 하나도 없고 고리타분한 것들만 늘어놨다. 새롭고 파격적인 작품을 보여주지 못해 죄송하다."라고 폭탄에 가까운 말을 꺼냈다.
경위는 경복궁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있던 시절 이야기로 올라간다. 1970년 <현상에서 흔적으로>이라는 실험미술로, 미술관 건물 외관 전체에 30cm 폭 광목으로 한 바퀴 두르고 천의 두 끝자락을 현관 앞 구멍에 매장하고 큰 돌을 얹어 미술관 전체를 묶는 작업을 재현하자는 의견을 김구림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냈다.
이 실험미술은 1970년 설치는 했지만, 26시간 만에 '초상집 분위기가 난다는 이유'로 철거되었다. 그런 전력이 있는 이 작품을 재현하자는 것이었는데 실현되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김구림 작가는 건물이 손상되는 것이 아닌데 왜 안 된다고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측의 해명은 서울관은 등록문화재로 관련 부서의 심의가 필요한 사안으로 시기가 짧아 협의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이 부분에서 김구림 작가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50년 전에는 그래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이 작업을 할 수 있었지만, 훨씬 개방되고, 선진국이 되었다는 이 시점에서 못한다고 하니...
그러니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고리타분한 것들만 늘어놨다고 미안하다고 한 것이다. 이 모두의 발단 즉 갈등은 쌍방의 인식 혹은 수용의 수준을 다르게 받아들여서 일어난 것이다. 도록으로 발생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주장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 전시 준비가 엉성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다.
한국 실험미술의 선구자이자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의 작품을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립'에서 두 달 만에 전시를 준비하니까 일어난 일이다. 최소 1년(이것도 최소한의 기간이다. 한 작가의 일생을 평가하는 전시를 1년으로도 준비는 부족한 시간이다.) 전에 시작해서 작가의 구상 듣고 자신들의 의견을 개진했어야 한다. 충분히 듣고, 세밀하게 협의를 했어야 한다. 이것이 프로페셔널이고 전문가 자세이다. 영어 잘하는 게 프로페셔널한 게 아니다.
그럼에도 갑자기 바뀐 학예사는 철저한 사전지식도, 준비도 없이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으니, 작가의 눈에는 늘어놓은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이 서로 인식과 수용의 수준을 다른 상황, 다른 말로 표현하면 나는 아주 중요한 사항이지만, 상대방은 그것이 사소한 사항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수준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상황인 것이다.
여기서는 누구의 인식 수준이 합당할까? 김구림 작가의 인식 수준, 아니면 국립현대미술관의 인식 수준.
전위, 아방가르드, 기성세대의 관념에 도전, 제도권에 대한 저항, 관습적인 인식과 의식에 거부, 이런 주제로 한평생을 작업한 작가에게 다시 제도라는 틀에 가두려고 했으니, 당연히 작가는 반발한 것이다. 그 정도를 예상하지 못했다면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이들은 아마추어일 수밖에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왜 그럴까요? 일하는 학예사가 없나요!
국립현대미술관은 무엇을 하나, 그 많은 인력과 예산을 어디다 쓰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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