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미술관 홈페이지에 '회화 1', '회화 2'가 읽힌다. 서울시립미술관은 동양화 대신 '한국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국립과 공립미술관이 서로 다르게 쓰는 '동양화'라는 이름은 100년도 거뜬히 넘은 시절부터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도 혼란스럽다. '서화미술회'가 있던 시절 동양화라는 이름을 어떤 생각으로 사용했을까?
1.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용하는 '회화 1'과 '회화 2'는 무엇을 위한 용어인가.
정확히 언제부터 회화 1, 회화 2로 바꾸어 소장품 관리를 위한 명목으로 미술장르를 구분해서 부른 것인지는 모른다. 그 시기보다는 회화 1과 회화 2를 직관적으로, 상식적으로, 추가 설명 없이 무엇을 지칭하는 말인지 알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에 문제가 있다.
관리 목적을 위해 용어를 어떻게 만들어 국립현대미술관만 사용하던지는 관계없지만, 홈페이지에서 정보를 찾는 사람들에게 적어도 혼란은 주지말아야 한다는 생각이다. 뒤적거리다 보면 회화 1은 흔히 말하는 동양화(한국화), 회화 2는 흔히 말하는 서양화를 지칭하는 말인 것인지는 알 수 있다. 하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처럼, 언어는 변하는 것이고, 많이 유통, 사용되는 말이 세력을 얻고 생명을 유지한다.
이렇게 보면 회화 1과 회화 2는 사용하지 않는 말이고 죽은 말이다. 그런데 굳이 일반인에게 정보를 전달하는 홈페이지에 이렇게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 그것도 여타의 공립미술관이 따르지도 않는 용어를, 학계에서도 사용하지 않는 용어를 사용해야 할까? 하물며 일반인에게는 들어보지도 못한 생소한 용어를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2. 그래서 찾아봤다. 언제부터 회화 1, 회화 2를 쓰기 시작한 것인지.
국립현대미술관연구논문 제6집 2014에 제2장 미술관학 연구에서 박미화의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에 도표로 정리되 었는 것을 볼 수 있다.
위 표를 보면 국립현대미술관이 1969년 경복궁에 처음 설립했을 당시에는 자료가 없는 듯하고, 이후 1973년 덕수궁 석조전으로 이전하면서 이런 분류표를 기록으로 남긴 듯하다. 다시 말하면 이런 방식으로 분류는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한다는 규정 같은 것은 이 시기에 처음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여튼, 1982년부터 회화 1, 회화 2가 등장하였지만 위 논문에 따르면 학예 전담인력의 편의에 따라 한국화, 양화라고 사용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1986년에 과천에 국립현대미술관이 들어서고 그 이전 누군가에 의해 이렇게 분류하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실무에서는 즉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들 조차 회화 1, 회화 2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러다가, 2000부터 2014년까지는 아예, 한국화, 회화라고 나누어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거의 모든 대학에서 학과 이름을 이렇게 붙여서 학생을 모집했다.
위 논문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분류체계의 재정비와 기술지침에서 소장품 분류에 대한 개념을 정의해 놓은 것이 있다.
2023년에 발간한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 기본정보 기술지침이라는 자료를 보면 여기에도 개념 정의가 되어 있지만, 혼동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회화를 다른 말로 장르를 구분하려니 이런 사달이 난 것이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정의 내리고, 용어를 쓰고, 학술적으로 혹은 내부적으로 구분해서 쓰면 될 일을 말이다.
부연해서 더 말하면, 23년에 회화 2에 대한 개념 정의를 캔버스나 종이, 패널 등의 바탕재에 각종 안료와 재료를 사용하여 형상을 표현한 작품하고 있다. 이 정의에 따르면 동양화, 서양화 모두 회화 2이다. 회화 1 정의에서는 동양화(한국화)를 염두에 둔 것으로 이 정의를 봐야 회화 1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개념 정의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정의에 대한 상식적인 이해 수준에서 따지면 그렇다.
위에서 말하는 개념 정의를 대충 이해하면 동양화, 서양화 모두 회화에 속하는 장르인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구분해서 일반인들의 상식적인 수준에서 혼돈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렇게 사용하려면 소장품 분류를 위해 필요하다면 다시 말하면, 자신이 사용하는 자료에만 사용하면 될 것을 굳이 이렇게 지침이라는 것으로 홈페이지에 올릴 필요가 있을까? 대다수에게 동의받지도 못하는 지침을 말이다.
3. 그런데 회화 1, 회화 2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처음 사용한 것은 아니다.
1945년 해방이 되고 경성제국대학교를 10월에 경성대학교로 개칭하여 운영하던 중, 1946년에 국립서울대학교로 설립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당시 미군정청 문교부 차관 오천석과 국장 최승만은 당시 경성부 학무과 과장으로 있던 장발(雨石, 張勃, 1901~2001 )에게 예술학부 미술부 창설을 위임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유학한 장발은 해방이후 정계에 투신해 국무총리까지 지낸 장면(張勉, 1899~1966)의 동생이다. 장발이 동경미술대학을 그만두고 미국으로 유학한 것은 미국에서 유학하던 그의 형 장면의 영향 때문으로 알려지고 있다. 장발은 1922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국립디자인학교에 입학하여 1923년 7월까지 수업을 들었다고 한다. 이후 컬럼비아대학교에 입학하여 실용미술학부에서 다양한 미술실기와 이론 과목을 1925년 6월까지 수강했다고 한다.
1925년 6월 이탈리아 로마 여행을 마치고 귀국하여 교사생활을 하다가 해방되던 해인 1945년 12월에 경성부 학무과장으로 취임한다. 미국에서 유학을 했으니 영어도 알 것이고 미군정청과 소통을 해야 하니 응당 그럴 수 있었겠다. 그러다가 위에서 말한 것처럼 미술부 창설을 위임받고 예술학부 미술부 설치위원회를 만들고 여러 자문을 받았다.
장발은 1946년 9월 서울시(경성부에서 명칭 변경이 됨) 학무과장을 사임하고 스스로 미수부 부장에 취임하면서 교수진을 꾸리고, 각 학과 책임 교수를 선임한다.
'미술부 학부장 장발, 제1 회화과 김용준, 제2 회화과 길진섭, 조각과 윤승욱, 도안과 이순석'이다.'
제1 회화과, 제2 회화과는 이미 예상하듯이 동양화(한국화) 서양화(양화)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사용하는 회화 1, 회화 2 이름과 숫자만 앞뒤로 있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면 장발은 왜 이런 이름을 만들었을까? 많은 논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해방공간에서는 동양화는 그다지 환대받지 못하는 장르였지만 그렇다고 가장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장르이고,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가장 많은 작가 수가 있었다. 서양화 작가를 배출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김용준의 영향이 가장 컸을 것이다. 이에 관한 것은 자료를 확보한 뒤에 다시 포스팅할 것이다)
따라서 현상적으로는 가장 많은 작가를 배척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일제 강점기동안 소위 '왜색'이라는 물을 빼고 민족 정체성이라는 것을 찾아야 하는 시기가 바로 해방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추측이지만 이런 이름을 만들어 사용한 것은 아닌가 추측한다.(여전히 이런 시각은 존재한다. 본격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김은호 편을 참고하시 바란다.)
저평가된 동양화가들 : 북종화 전통을 지키고 이어낸 이당 김은호 - 1편
저평가된 동양화가들 : 북종화 전통을 지키고 이어낸 이당 김은호 - 2편
저평가된 동양화가들 : 북종화 전통을 지키고 이어낸 이당 김은호 - 3편
하지만 곧 서울대학교도 이것을 통합해 회화과로 사용한다. 2024년 현재는 '동양화'과 '서양화과'로 나뉘어 있다. 참고로 홍익대학교는 '동양화'와 '회화과'로 되어 있다.
이제 국립현대미술관이 소장품 분류기준으로 사용하는 회화 1, 회화 2의 탄생의 기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 글이 계획보다 길어져 2편으로 나눈다. 2편에서는 가능한 외국 미술관들이 사용하는 분류기준을 간단히 살펴보고 동양화라는 이름이 등장한 시기와 서화미술화에 대하여 기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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