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타오 시게마사 (北尾 重政, 1739 ~ 1820)는 에도시대 중기에 활약한 우키요에 작가이다. 독자적인 기법으로 그린 그려진 미인화, 배우 그림, 풍경화 등은 에도 서민에게 널리 사랑받아 많이 제작되었다. 그의 화풍에 매료된 많은 화가를 제자로 받아들여 '키타오파(北尾派)'의 시조로 불린다.
키타오 시게마사의 생애와 활동
키타오 시게마사는 1739년 에도의 코덴마초(현재의 도쿄의 츄오구)에 있는 서점에서 태어났다. 당시 서점은 출판활동을 하는 등 문화와 지식이 유통되는 장소하고 할 수 있다. 서점을 하는 아버지 스하라야 사부로 베에(須原屋三郎兵衛)의 장남으로 태어나 그림책과 판화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자랐다. 문화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는 자연과 그림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독학으로 그림을 연마했다. 가업은 동생에게 양보하고 우키요에 화가로 길을 걷게 된다.
키타오 시게마사는 독학으로 판화를 배웠다는 설이 유력하다. 특정 화가에게 사사받았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나 도리이 키요미츠(鳥居清満), 니시카와 스게노부(西川祐信 ) 등의 화풍에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는 자란 환경 때문인지 제작은 주로 책(판본 - 문자나 그림을 목판으로 새겨 종이에 인쇄하여 만든 책을 부르는 일본용어)에 목판으로 인쇄하는 그림을 주로 제작했습니다. 이런 것은 책의 보급과 유통을 촉진하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키타오 시게마사는 목판의 기법을 구사해, 자신의 그림을 판본으로서 제작하여 유통을 했다.
그의 활동 초기에는 紅摺絵로 제작한 가부키 배우 그림을 주로 그렸다고 한다. 도리이파의 영향을 받아 세련된 여성을 주로 제작하였는데 당시 이런 화풍이 유행했기에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1772년이 이르러 키타오 시게마사의 미인도는 사실적으로 그리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에도 중기에는 여성의 머리스타일이 등롱빈(燈篭鬢- 우리말에는 없어 한자대로 발음을 적음)이 대유행하는데, 키타오는 이 머리 스타일을 그림에 그대로 도입한다.
또 1776년에는 가츠가와 슌쇼(勝川春章)와 요시와라 유녀의 거울(青楼美人合姿鏡)을 제작하였다. 이 책은 기존 우키요에에 비하여 유녀의 옷과 머리를 보다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미인화는 니시키에와 육필화로 제작하였다. 이런 인기는 다이묘가 게이샤의 초상화를 의뢰하기도 했다. 니가타현의 번주인 다이묘가 그가 총애하는 게이샤가 있었는데, 그녀를 자주 만나러 갈 수 없어서 초상화라도 갖고 싶어 했다. 그 번주는 키타오 시게마사에게 의뢰하여 자신이 총애하는 게이샤의 초상화를 그려 받았고, 이 그림에 매우 만족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키타오 시게마사는 화가로서 많은 활약을 했다. 그는 많은 그림과 춘화를 그렸고 황표지(에도시대에 출판된 그림이 삽입된 가나로 쓴 소설로 표지가 황색이라 황표지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에 이르러서는 100점 이상이나 작품을 그려냈다. 이 시기에 주로 유통된 책은 보다 저렴하게 제작한 스미즈리(흑백으로 된 그림)로 제작된 키다오 시게마사의 책이 서민에게 주로 유통되었다.
키타오 시게마사는 회화뿐만 아니라, 배우와 서예 다른 분야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배우 역할을 하면서 대사와 풍경을 표현하는 것에도 심혈을 기울여 자신의 작품에 그 감성을 살리려 애썼다. 서예에서는 전서와 예성에 능하여 문자의 아름다움과 그 의미를 잘 이해하여 책과 그림을 일체화하는 화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키타오 시게마사는 뛰어난 지도력을 가지고 있어 많은 제자를 육성했다. 알려진 제자로는 키타오 마사요시(北尾政美), 키타오마사노부( 北尾政演), 쿠보슌만( 窪俊満) 3명이 유명하다. 이들은 키타오 지도를 받고 자신만의 창작성을 발휘하여 개성 있는 작품을 세상에 발표했다.
키타오 시게마사 작품이 가지는 특징
무엇보다 섬세한 묘사와 세부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수 있다. 인물에서는 표정, 행동, 기모노의 무늬, 머리 장식품 등을 집요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음으로는 차분한 색채 사용이다. 선명한 색을 사용하면서도 화려한 배색으로 우키요에를 돋보이게 하면서도 우아한 색의 배합으로 차분한 느낌을 자아낸다. 미인도는 처음에는 스크키 하루노부의 화풍을 닮아 날씬하고 가냘픈 여성을 그렸지만, 이후에는 사실적인 화풍으로 변화했다. 그는 일정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장르의 우키요에를 제작했다. 그의 폭넓은 소재는 작품제작의 유연성만이 아니라 각 소재가 가지는 독특한 이야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그의 주요 작품 2가지를 소개한다. 위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첫 번째는 요시와라 유녀의 거울(青楼美人合姿鏡)이다. 요시와라는 에도에 있는 유곽으로 유녀들을 니시키에( 錦絵)로 제작한 그림책이다. 1776년 가츠가와 슌쇼(勝川春章)와 함께 제작한 것으로 각 기루가 자랑하는 유녀들이 계절의 풍물과 서화, 노래, 향합 등이나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책 말미에는 유녀들의 활약이나 놀이에 관한 것을 게재하여 그녀들의 풍부한 교양을 소개했다. 니시키에로 제작한 판화는 기모노의 무늬와 소품까지 정교하게 묘사되어 사실감을 부여하고 있다. 이 책은 일반 판매만이 아니라, 게재된 유녀와 기루가 출판 경비 일부를 부담하여 선전용이나 선물로 활용되었다. 이는 에도 시대 유흥 문화와 그림책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화류계의 호사스러움과 아름다움을 그린 것으로 현대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사료 가치로도 매우 높은 책으로 평가받고 있다.
두 번째로 소개하는 책은 게이샤와 하코야( 芸者と箱屋)이다. 유녀 즉 게이샤와 사미센을 운반하는 남자(여장을 남자도 있다고 한다)를 하코야라고 한다. 길 안내 겸 경호원 역할도 하고 다양한 일을 수행하다고 한다. 어쨌든 게이샤와 하코야라는 이 작품이 일반 대중에게 가장 많인 알려진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키타오 시게마사의 초기작품에서는 스크지 하루노부 풍으로 화려한 인물을 그렸지만, 점차 화풍이 변해 독자적인 미인화를 확립한다. 대표적인 미인도가 바로 게이샤와 하코야이다. 사미센을 넣은 나무 상자에 철물까지 그려넣었고 게이샤의 기모노에 있는 화려한 무늬까지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특히 귀 옆으로 돌출한 돌출한 머리 스타일은 이 시대에 유행한 등롱빈(燈篭鬢)이다.
하코야도 여기서는 여성으로 묘사되어 있는 점이 눈에 띈다. 에도 시대에 게이샤가 출장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그 당시 이런 문화가 얼마나 유행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판화를 유럽으로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우키요에 작가 (6) (0) | 2025.04.15 |
---|---|
풍경화를 주류로 만든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우키요에 작가 5 (0) | 2025.04.12 |
다색 목판화를 완성시킨 스즈키 하루노부(鈴木春信)- 우키요에 작가 (3) (0) | 2025.02.16 |
가부키 그림으로 최고가 된 토리이 키요노부(鳥居清信)- 우키요에 작가 (2) (3) | 2024.12.28 |
전성기에서 쇠퇴기까지의 등장한 작가들 - 우키요에 5 (0) | 2024.12.22 |
니시무라 시게나가(西村重長), 이시카와 토요노부(石川豊信) - 우키요에 4 (2) | 2024.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