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특색·맥락 따위 없다...선거철마다 바뀌는 공립미술관 정체성"은 4월 15일 한국경제 신문에 난 기사(유승목 기자)제목이다. 공립미술관이 정체성을 갖지 못하는 상황을 비판하고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는 의도로 작성된 기사이다. 그래서 생각해 보았다.
'지역 특색·맥락 없다...선거철마다 바뀌는 공립미술관 정체성', 말하기 전에
기자는 먼저 여러 번에 걸쳐 공공미술에 관한 기사를 내고 있었다.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설치한 공공미술에 관한 여러 가지 문제점을 언급하면서 이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전하고 있다.
신안군을 비롯해 그동안 있었던 문제의 공공미술에 관해 예를 들면서 비판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포스팅한 글이 있으므로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청도군의 조형물은 특정작가, 특혜 의혹이라는 기사는 잘못되었다
청도 이외에 신안에서도 조형물 사기가 있었다는데, 왜 지자체는 이런 일을 할까.
신안 '천사상' 사건이 있었던 섬 근처, 비금도에 '앤터니 곰리' 조형물이?
'지역 특색·맥락 없다...선거철마다 바뀌는 공립미술관 정체성', 그런데 이것이 필요할까?
기사를 먼저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공립미술관의 정체성이다. 2년 전 국내 첫 미디어아트 중심 미술관을 표방하며 문을 연 울산시립미술관이 대표적이다.(중략)
‘정체성(identity)’은 미술관의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무엇을 지향하느냐에 따라 작품 수집부터 전시 기획, 연구·교육까지 전반적인 운영 방향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아트 등 미술의 영역이 방대한 만큼 정체성은 미술관이 집중하는 가치를 명징하게 드러내는 여과기 역할을 하는 셈이다.(중략)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공립미술관이 지방자치단체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한 데 있다고 미술계에서는 보고 있다.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원칙이 지역 문화예술 현장에선 제대로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자체장들이 자신의 시정 철학을 선보이기 위한 도구로 공립미술관을 활용하느라 구조적으로 지속가능한 로드맵을 짤 수가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중략)
내용에 있어서 전반적으로는 동의한다. 하지만,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꼭 그렇다고도 할 수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문제가 지방자치단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공립미술관을 목적과 역할을 제대로 지자체에 알려주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무능한 관장과 학예사들의 책임도 크다.
그동안 많은 공립미술관장이 공립미술관을 거쳐갔지만, 박수받는 이들이 있을까? 하다 못해 함께 일했던 학예사들에게만이라도 제대로 평가받은 관장이 있을까, 아니 있었을까?
1. 공립미술관에서 지역 특색, 맥락은 꼭 필요한가?
'지역 특색, 맥락 따위 없다'는 말은 문맥상으로 이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과연 지역 특색과 맥락이 필요할까? 아니 미술에서 지역 특색과 맥락이 있기나 할까?
'미술'(art의 번역어)이라는 말이 일본을 통해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20~30년 되었을까? 미술이라는 용어가 들어온 공식적인 기록을 찾으면 1876년 조일수호조규 체결 이후에 일본에 파견된 수신사(1876부터 1882년까지 4차례 파견)가 돌아와 보고문 형식으로 저술한 여러 책들에서 출몰한다. 그러니까 약 150년 정도가 되었다. 시간으로만 따지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여기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이라는 기간이 있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적어도, 미술에 있어서 지역 특색이나 맥락을 형성할만한 사회적, 경제적 기반을 갖춘 시기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길게 잡아도 어느 정도 기반을 갖출만한 시기라면 70년대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지만 말이다. 이렇게 따지면 이제 50여 년이 되었다.
그러니까 지역의 특색이나 맥락이 형성될 틈이 없었다고 하는 편이 옳다고 여겨진다. 덧붙이면 경부고속도가 생기고 일일생활권이 되고, KTX가 생기며 반나절 생활권이 되면서 있었던 지역 특색마저 사라지려 한다. 단적인 예를 들면 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이런 사투리를 TV방송에서나 들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지역 특색, 맥락은 찾기 어렵다.
그러면 왜 이것이 필요하다고 말할까?
공립미술관은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기관으로 위치하려면 이런 것이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야 그 지방 출신의 작가들,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그 지역에 있는 미술대학 출신의 작가 지망생들에게 위안(?),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또 하나 예를 들면 이런 것이 있다. 김환기는 신안군에서 태어났지만 그곳에서 미술대학을 나온 것이 아니다. 물론 해방 이전에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해서 작업을 하기는 했다. 천경자도 고흥 출신의 우리나라 대표 여류화가이다. 그런데 천경자도 일본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이렇게 따지면 이들 작가를 어떻게 지역의 특색을 가진 혹은 맥락을 가진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지역의 특색, 맥락은 이런 것을 말한 것이 아닐까? 그럴 것이다.
그래서 김환기, 천경자는 그 지역 출신 작가이다. 그러니까 그 지역 출신 작가를 우대해야 한다는 뜻이 지역 특색, 맥락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담겨있다고 보아도 되지 않을까? 결국 현재 지자체 공립미술관이 하고 있는 '미술작품 수집공고문'을 보면 이것이, 이런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없는데 찾으라고 하면 막막하다. 다만 앞으로 추구하고 형성할만한 특색과 맥락을 만들어 가려는 긴 노력은 필요할 것이다.
2. 손바닥 뒤집듯 공립미술관의 정체성을 바꾼다?
가장 큰 문제점은 공립미술관의 정체성을 지자체장의 시정철학을 선보이기 위한 도구 공립미술관을 활용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렸다.
먼저 '정체성'(identity)이란 말을 생각해 보자. 기사에서 설명한 것(위에 인용된 기사를 참고할 것)을 그대로 따르면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렇게 정체성을 즉 지향성을 설정하는 것이 미술관 운영에 있어서는 비현실적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다.
예를 들면 공립미술관 홈페이지(누리집)에 들어가면 비전, 미션 이런 것이 나열되어 있다. 그마저도 없는 공립미술관이 많지만 말이다. 하여튼, 이렇게 나열된 정체성을 위한 비전, 미션은 하나같이 현실성 없이, 좋은 말을 나열한 것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정체성을 추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닐 뿐만 아니라, 없기 때문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경우 공사립미술관을 불문하고 많은 작품을 소장하고 그것을 보여 줄 건물을 만든다. 즉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소장품에 따라 그 미술관이 추구할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환경이 아니다. 무에서, 즉 소장품이 없는 상태에서 정체성을 조작해야 하는 것이다.
설령,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처음 정체성을 설정한다 하더라도, 짧게 말하면 좋은 미술관을 만드는 것이 정체성이다. 어떻게 회화, 조각, 설치, 미디어아트 등 이렇게 미술장르를 가지고 정체성을 따질 수 있나? 조각이 많다고, 미디어아트를 수집하면 그것이 공립미술관의 정체성이 되나? 그것은 아니다 그래서 일부가 틀렸다는 말이다.
정체성은 미술장르를 한정해서 정립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어떻게 한쪽에 치우친 장르를 다루는 공립미술관이 성립할 수 있겠는가? 울산시립미술관이 미디어아트를 수집하다가 포기해서 정체성이 바뀌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애초부터 그것이 울산시립미술관의 정체성이 아니라, 수집 방향이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울산시립미술관장과 학예사들이 잘해다는 의미는 아니다.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는 말은 많이 들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일이다.
조금 더 생각하면, 지역 특색, 맥락을 따지면서 미디어아트를 수집하겠는가? 울산에 미디어아트를 하는 작가가 얼마나 되며, 그것의 역사가 얼마나 될까? 그러니까 그것을 정체성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주장인 것이다. 그것을 정체성이라고 여기저기 떠들고, 그것을 비판적인 판단 없이 받아들인 것이 이런 문제로 번지 것이다.
3. 이런 사태가 발생하는 원인은 짧은 공립미술관장 임기 때문이라는 주장에서...
우리나라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공립미술관장 임기는 짧다. 아주 짧다. 그래서 미술관을 장기적인 운영계획과 수집계획을 수립할 수 없어 정체성 확립이 어렵다는 주장일 것이다.
이 역시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틀린 부분만 말하자면, 3~4년 임기 동안에도 대다수 공립미술관장은 이런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이다. 애초부터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혹은 철저히 능력이 검증된 사람이 관장으로 임명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 부분도 말하자면 아주 길지만, 공립미술관 운영과 학예에 대한 자신의 철학이 없는 사람에게 이런 것을 기대하는 것이 애초부터 무리이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 관장과 학예사들은 잘못이 없고 지자체장들만 문제라고 판단하는 것에는 오류가 있다.
공무원이 운영하는 컴퓨터 행정시스템 접속도 못하는 관장도 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예전에 말이다. 지금도 이런 문제는 아니지만, 지자체 공립미술관장이 일으켰던 많은 문제들이 있었다. 어느새 대부분 망각하고 있어서 그렇지, 기본적인 소양도 갖추지 못해 언론에 오르내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우리는 모른다.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말이다. 그래서 외부로 보이는 것만 놓고 평가하더라도, 특색있고 맥락있는 공립미술관을 떠 올 수 있을까? 더욱이 확고한 정체성을 확립한 공립미술관이 있나? 미안하게도 단정적으로 말하는 것이 무리인 듯싶지만, 없다.
공립미술관에서 그대로 가장 많은 예산을 집행하는 서울시립미술관도 서울시민에게는 그저 하나의 공립미술관일 뿐이다. 정체성 없는 미술관 말이다.
그러니까, 꼭 짧은 공립미술관장 임기 때문에 그런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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