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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시장

서울옥션 2024 첫 경매에서 박래현의 작품 6억5천만원에 낙찰되다

by !))*!))* 2024. 1. 25.

서울옥션에서 1월 23일 오후 <위대한 만남>이라는 주제로 박생광(1904~1985)과 박래현(1920~1976) 두 작가의 작품 143점이 라이브 경매로 진행되었다. 새해 벽두부터 한국의 대표 채색화가로 꼽히는 두 작가의 경매에 이목이 쏠렸다. 그동안 동양화는 특히 채색화는 콜렉터에게 인기가 없는 분야였지만,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높은 가격에 낙찰되었다.   

 

박생광의 <무당 12>와 <백운대 인수봉>  낙찰

박생광의 <무당 12>와 <백운대 인수봉 해질녘>이 각각 1억5000만 원에 낙찰되었다. 박생광의 작품은 일반 콜렉터에게 그다지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에 낙찰을 받은 곳이 미술관인지 일반인지 알 수 없지만, 박생광의 채색화가 낙찰되었다는 소식을 오랜만에 듣는다.

박생광 무당 12
박생광, 무당 12, 한지에 채색, 139.5&times;139cm, 1984

 

 

 

내고(乃古) 박생광(朴生光, 1904~1985)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교토시립회화전문학교에서 그림을 공부했다. 1945년 귀국하여 진주에 머물면서 활동하다, 1967년 홍익대학교와 경희대학교에 출강하며 작품활동을 지속한다.

 

1974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1977년 귀국하면서 개인전을 열었지만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해방 이후 동양화가 특히 채색화가들은 왜색이 스며들었다는 이유로 그다지 환영받는 장르가 아니었다. 그러니 그들의 고독은 아주 길었을 것이다 그러다가 갑자기 박생광의 예술인생에도 빛이 들어왔다.

 

1981년 '백상기념관', 1984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에서 열렸던 개인전이 화단에 큰 주목을 끌었다. 이 시기는 우리 사회에 민족문화의 위대함을 되찾기에 관한 열풍과 미술계에서 전통문화에 대한 탐구와 재발견을 시도하려는 분위기와 조합되어 우리 미술계에 새로운 기운이 생성하던 때였다. 그러니까 한국의 전통적인 것을 되살리자는 열풍이 나라 전체를 흔들었고 그런 분위기에 적합한 작품이 박생광의 것이었다. 

 

박생광이 1981, 1984년 개인전에 출품했던 작품은 우리의 무속과 사찰의 탱화와 건축의 단청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오방색과 이미지를 채용하여 강렬하고 자유로운 예술을 보여준 것이었다. 이때만 해도한국미술 특히 동양화는 신-문인수묵화 혹은 수묵화 운동으로 여전히 전통적인 관념을 새롭게 해석하려는 운동이 일어났고 있었던 시기이다.

 

박생광은 하지만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개척하면서, 무당의 화려한 복장과 도구들에 매력을 느껴 그것을 화면에 옮겼고 이런 그의 감성은 사찰의 화려한 도구와 채색법으로 확대했다. 그의 작품은 먹을 부분적으로 사용하면서 과감한 원색과 힘이 넘치는 선을 사용했다. 이는 인간이 만든 경계와 구속을 박탈하고, 자유를 구가하던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여겨졌다. 다만 그동안 왜색이라는 안경으로, 다른 이들의 주장을 인정하는 듯한 애매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박생광은 자신의 감각을 믿었다.

 

 박생광 개인전은 세간에 화제가 되었고, 당시  프랑스 미술가협회장이며 르 살롱 대표인 아르노 도트리브가 내한하여 박생광의 작품을 보고 돌아가, '파리 그랑팔레'의 한국미술전에 박생광 부스를 만들고 그의 작품으로 대형 포스터까지 제작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화려한 예술인생이 피려는 순간 이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동녘에 거닐다: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에서 뽑은 3 작품

동녘에 거닐다: 동산 박주환 컬렉션 특별전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동양화 기증작품 전시이다. 2000년대 들어서서 동양화는 주목받지 못하는 장르가 되었지만, 우리나라 1세대 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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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래현의 작품 <이른 아침>(1956)이 낙찰되다. 

박래현 작품은 <기도> 4억 원, <향연>  4억 원,  <단장>  2억5000만 원에 낙찰되었고, 이번 경매에서 최고가는 <이른 아침>은 6억5000만 원이었다. 기억이 확실하지 않지만, 동양화의 최고 낙찰가는 아마도, 천경자의 <정원>(1962년)이 2016년 K옥션에서 17억 원에 낙찰된 것이 아닌가 싶다. 내 기억이 맞다면 천경자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동양화의 현대미술 작품 중에서 최고가격이 이라고 생각된다.(이것이 사실인지 그다지 자신은 없다.)  

 

사실 동양화는 90년대 이후 콜렉터에게 인기가 점점 내려가고 있다. 최근 아니 거의 십여 년 동안은 청전과 소정의 작품 정도가 겨우 경매에 낙찰되는 정도였다. 예외적으로 천경자 작품은 인기가 높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싶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언급하려 한다. 

박래현 이른 아침
박래현, 이른아침, 종이에 채색, 253&times;194cm, 1956

   우향(雨鄕) 박래현(朴崍賢, 1920~1976)은 평안남도 진남포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941년 동경여자미술전문학교 일본화과에 입학하여 재학생 시절에 1943년에 <단장>(이번 경매에서 낙찰된 작품)을 첫 출품하여 특선과 함께 총독상을 받는다. 박래현이 수상하기 위한 서울에 왔을 때  운보 김기창을 처음 만났고, 해방 이후 1946년에 결혼한다.

박래현 단장
박래현, 단장, 종이에 채색, 131&times;54.7cm 1943.

이 작품은 일본에서 하숙하던 집주인의 딸을 모델로 한 작품으로 일본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였고 일본화의 형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연히 학생 신분이었기에 배우는 입장에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습득하는 과정에 있었기에 무르익은 박래현의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해방 이후에 5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작품은 일본화의 영향으로 사실적인 표현이었으나, 6.25 한국전쟁 이후 크게 화풍에 변화가 온다. 해방 이후 왜색을 제거해야 한다는 화단의 주장과 서구의 현대미술이 유입되면서 박래현의 화풍은 빠르게 변화한다. 박래현은 국제적인 미술사조와 시대의 변화에 민감했고 관찰력 또한 뛰어났다. 50년대 후반 추상표현주의가 세계적인 흐름으로 등장하자,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람회(국전)에서 여성 최초로 대통령상을 수상한 <노점>과  이번 경매에서 낙찰된 <이른 아침>과 같은 경향의 작품을 발표한다. <이른 아침>은 '대한미술협회'(대한미협)에서 주최한 민전으로 여기서도 대통령상을 수상한다. 

 

잠깐 '대한미협'을 언급하면 1945년 해방 이후 조선미술가협회가 재조직되어 출발한 단체로 1950년부터 매년 1~2회 전시화를 개최해 왔다. 1951년 전쟁 중에도 전시를 개최하였고 1953년까지 부산에서 이후부터는 서울 경복궁에서 열었다. 국전에 관한 이견으로 한국미협으로 분리되기도 했으나 1961년에 다시 대한미협으로 통합된다. 

박래현 노점
박래현, 노점, 종이에 채색, 267&times;210cm, 195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노점>과 <이른 아침>은 <단장>과 확연히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흔히 입체파의 영향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개인적 의견으로는 무리가 있는 평가로 보인다. 물론 국제적인 흐름에 민감했던 박래현이 입체파를 몰랐을 리는 없지만, 그보다는 일본화풍을 벗어나기 위한 고심의 결과가 더 큰 것이 아닌가 싶다.

 

먼저 일본화는 형태를 그리면서 선을 일률적으로 그린다. 명암도 없고 가늘고 굵은 정도가 없이 일정하게 그리지만 이 두 작품에서는 입체감을 주기 위해 진하고 옅게 혹은 굵거나 얇게 선을 처리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화에서 많이 쓰는 호본이라는 안료 사용도 없다.   

 

그리고 소재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하게 보는 풍경이라는 점이다. 삶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 시장, 노점 그리고 여성들의 모습을 관찰하여 화면에 옮겨낸 것이 박래현의 예민한 눈썰미를 느낄 수 있다. <노점>이 정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이른 아침>은 동적인 느낌이 강하다. 특히 <이른 아침>에서 보이는 어린아이는 엄마와 반대방향으로 가려는 모습을 순간 포착하여 엄마로서 박래현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후 형태는 더욱 추상화되었고, 60년 중엽에 이르러 완전히 형태는 사라지고 먹과 물감의 번짐 효과를 이용하는 화풍으로 변모한다. 화면에서 완전히 형태를 배제하고 질료 자체의 표현성에 탐닉하게 된다. 동양화 물감이 종이에서 번지는 기본적인 특성을 살려 형상을 배제하고 철저한 계획 아래에서 오로지 번지는 기법만으로 화면을 구성하는 작업을 한다. 60년 초부터 중엽까지 다음 작품 시리즈로 연결되는 과정에 있는 이 시리즈는 동양화 물감의 특성을 철저하게 탐구하는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박래현 작품
박래현, 작품, 종이에 채색, 169x135cm, 1966~1967, 뮤지엄 산 소장

 

60년 중엽부터 시작된 이 시리즈는 강렬한 원색이 눈에 두드러지게 한 조형성과 물감이 번지는 띠 형태의 선이 조합된 작품이다. 붓에 옅은 먹을 가득 묻혀 한지에 선을 그어서 번지기를 기다린 다음 어느 정도 마르면 이 면을 마찰하거나, 다시 조금 더 진한 먹을 묻힌 붓으로 번진 면 사이를 지그재그로 세밀하게 빈틈없이 채워나간다. 이렇게 화면을 구성하고 난 다음에 선 사이사이 빈 곳에 강렬한 원색을 칠해서 화면 전체에 조형을 완성해 나간다. 이런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과정을 철저히 계획한 뒤에 진행되는 작업이다.

 

1967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프랫 그래픽 아트 센터에서 판화를 배워 여러 점을 제작한다. 그리고 생활 기물을 이용한 새로운 태피스트리 작업을 시작한다. 1967년 상파울루 비엔날레에 출품하면서 중남미를 여행한 뒤 1974년까지 미국 뉴욕에 머물면서 자신의 예술세계를 확장하려 했다. 동야화와 판화기법을 접목한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겠다는 다짐은 귀국 후에 발병한 간암으로 1976년에 타계한고 만다. 

 

176회 서울옥션 결과 보고 (2023. 12. 19)

12월 19일(화, 오후 4:00)에 열었던 서울옥션 근현미술품 경매는 출품작 51점 중에서 31점 낙찰되었다. 낙찰가는 추정가의 가장 낮은 금액으로 낙찰된 작품이 대부분이었으며, 추정가를 넘긴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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