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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공립미술관박물관

다시 가 본 장욱진 회고전 -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by !))*!))* 2023. 12. 26.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은 이미 한 번 포스팅했었다. 그럼에도 이만큼 대규모로 장욱진 작품을 볼 수 있는 기획전이 열리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최근 다시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을 갔다 왔다. 2023년을 보내는 연말이라 그런지 몰라도 관람객이 꽤나 많았다. 우리나라의 시민들도 좋은 전시회는 반드시 보아야 한다는 의식이 높아진 듯하다. 그만큼 문화 예술을 즐기려는 의식과 취미 수준이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일 것이다.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평생, 그림 그리는 일과 가족을 사랑하는 일에만 열중하던 장욱진은 '심플'(단순)이라는 말로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했다. 대부분 자신이 자유로이 운용할 수 있는 30, 40㎝ 넘지 않는 크기로 그

red-pig-11.tistory.com

 

 

 

장욱진 회고전에서 다시 뽑은 나만의 베스트 5

장욱진 자화상 1951년에 제작한 작품
장욱진, 자화상, 종이에 유채, 10.8×14.8cm, 1951

 

아래를 클릭하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장욱진 회고전 예약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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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 1951년 자화상

6.25 한국전쟁 중에 종군화가단 생활을 청산하고, 1951년에 어머니 성화로 고향인 충청남도 연기군에 내려가 안정을 취하던 때에 그린 작품이다. 참혹한 전쟁 통에 제대로 유화물감이나 캔버스를 구할 수 없어, 가지고 있던 몇 개 물감과 종이에 그린 것이다. 그가 즐겨 그리던 작품보다 더 작게 그린 자화상이다. 자화상이라고 해도 작가 자신의 얼굴을 그린 제대로 된 자화상은 아니다. 이 작품도 널리 알려지기 이전에는 「보리밭」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화면 구성은 아주 단순하다. 노란 황금빛 들판을 아래 부분 가운데에서 시작되는 붉은  길이 뒤로 가면서 들판을 가로질러 이어진다. 붉은 길이 화면을 나누면서 보는 사람의 시선을 구름이 떠있는 하늘까지 끌고 간다. 장욱진의 화면구성 능력을 여지없이 볼 수 있는 기재이다. 하늘 끝에서는 줄지어 나는 검은 새가 들판 앞으로 날아와 감상자의 시선은 다시 화면 맨 앞에 있는 인물로 끌어 온다.  

 

화면 앞에 자화상이라고 부르는 사람의 머리는 가운데 가르마를 타고, 콧수염을 길렀다. 한 손에는 우산을 그리고 다른 손에는 가방을 들고 있다. 양복을 입은 모양새가 영락없이 영국신사 차림이다. 일본 동경에서 유학을 했으니 이런 남성복장은 장욱진에게는 꽤 익숙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남성의 자세는 어색하지 않다.

 

단순하다. 장욱진이 평생 자신의 작품에 표현하려 했던 단순 그 자체이다. 하지만 그가 어느 글에서 고백했듯이 이 작품은 완전 고독 속에서 발견한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현실을 벗어나 완벽한 세상 속에 있는 가장 행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는 상상과 예측은 충분히 가능하다. 완전한 고독과 단절. 그만큼 우리가 겪는 현실은 참혹한 것이다. 1951년 봄은 보리가 익어가는 들판과 들게 장욱진에게는 역설적으로 참혹했을 것이다.        

장욱진 1960년에 그린 배와 물고기
장욱진, 배와 물괴, 캔버스에 유채, 1960

 

 

 

두 번째 : 1960년 배와 물고기

누구나 아는 사실 혹은 상상할 수 있는 생각을 위트있게 표현한 작품이다. 단순한 물고기 형태와 단순한 배가 서로 마주해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화면을 절반으로 나누어 물고기와 배가 차지하고 있다. 60년대까지 장욱진의 작품은 화면에 유화물감이 꽤나 두껍게 칠하고 있다. 캔버스를 짜는 실 무늬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 마티에르를 가지고 있다. 60년대를 넘어 70년대 가까이 가면 화면에서 캔버스 실 무늬가 그대로 드러난다.

 

이 작품은 눈으로 직접 볼 때 더 아름답다. 단순한 형태는 물론이고 화면 전체에서 여러 푸른색이 서로 어울러 만들어내는 묘한 느낌을 감상자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타의 작품에서 느낄 수없는 색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품고 있다. 사실 장욱진의 작품에서 색이 아름답다고 느끼게 하는 작품은 드물다.

장욱진의 1977년 작품으로 까치 집이다.
장욱진, 까치 집, 캔버스에 유채, 27.1×13.6cm, 1977

 

 

세 번째 : 1977년 까지 집

사람마다 내 그림을 보고는 그림의 설명을 요구해 온다. 그림을 그리는 누구도 그렇겠지만, 나는 항상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 생각이란 게 그림의 발상(發想)으로 되는 것은 물론이다. 이 생각이 좋고 나쁜 것으로 그림의 됨됨이 또한 결정되기도 한다.

나의 생각이란 것은 무어 특이한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오는 여러 가지 포름(forme)을 재구성하는 일이다. 즉 산만한 외부 형태들을 나의 힘으로 통일시키는 일이다. … 한 작가의 개성적인 발상과 방법만이 그림의 기준이 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있었던 질서의 파괴는 단지 파괴로서 결말을 지어서는 안 된다. 개성적인 동시에 그것은 또한 보편성을 가진 것이 아니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항상 자기의 언어를 가지는 동시에 동시대인의 공동한 언어임을 또한 망각해서는 아니 된다. 

이런 점이 오늘날 작가들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장욱진, 발상과 방법, 문학예술, 1955. 6.)

※ 이 작품에 관한 감상은 작가의 글로 대신한다.

장욱진, 들, 캔버스에 유채, 1986

 

 

 

네 번째 : 1986년 들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라면 전부 명작 혹은 훌륭한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고흐가 그린 모든 작품이 명작은 아니다. 어떤 작가라도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평생 동안 그림을 그렸다면 그 많은 그림이 모두 훌륭할 수는 없다.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의 말을 믿는다.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그것을 생각하고, 작가의 일생을 책으로 읽고 이해하려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스스로 감상의 능력을 키울 노력은 하지 않고 그저 바라만 보다 만다. 남들이 하는 이야기, 도슨트가 하는 이야기만 듣고서는 감상을 잘한 것으로 착각한다. 그림을 예술을 진정 이해하는 일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으로 하는 것이다.  

 

요즘 미술관을 가는 인구가 많이 늘었다. 예전보다는 훨씬. 그런데 그 사람 대부분은 사진 찍기 바쁘다. 요즘 세태가 그러니 뭐라 할 것은 없지만, 진정 그 작가의 작품을 이해하고 그의 예술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영 보기 어렵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장욱진의 대규모 회고전에서 볼 수 있는 그 많은 작품 모두가 훌륭한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없다고 해야 정확하다.

 

작가도 예술가도 사람이다. 사람이 가진 번뇌와 고통과 삶의 회의는 같다. 그런 속에서도 예술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고 끊임없이 이어갔다는 그 사실, 그 삶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진정 작가의 작품이 눈에 들어온다.  

장욱진의 1988년작인 학과 까치

 

다섯 번째 : 1988년 까치와 학

다섯 번째는 이 글을 읽는 분의 감상을 위해 여백으로 남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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