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유행하던 맥클라인(D. McClean)의 빈센트(Vincent : Starry, Starry Night)라는 팝송을 한때 열심히 들은 기억이 있다. 겨우 알파벳 철자나 깨쳤던 실력으로 무슨 뜻인지 알리 없었지만, 괜히 마음을 설레게 해서 많이 좋아했던 기억이 난다. 그 빈센트가 불멸의 작품을 남긴 후기인상파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한참 뒤이다.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빈센트는 딱 10년 동안 그림을 그렸다.
네덜란드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고흐는 숙부가 일하는 화랑에 취직했지만, 몇 년 뒤에 해고된다. 그리고 잠시 서점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신앙심이 돈독해지자 벨기에 탄광으로 갔다. 가난한 삶을 이어가는 광부들에게 선교사업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지나친 그의 열정은 자신의 적은 재산마저 가난한 광부들에게 나누어주고, 믿음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후, 그는 절망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화가의 ㅇ길이 자신의 천직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18890년 경이다. 그가 1890년에 권총으로 자신 가슴을 쏴서 자살했으니까, 딱 10년간 그림을 그렸을 뿐이다.
그의 자살은 영원한 불행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각인시켰지만, 마지막 생애 10년간 그림을 열정적으로 그렸다. 어느 화가보다 사랑받는 작품을 이 세상의 선물로 우리에게 남기려 열정을 다했다. 지독한 가난에 가슴속 한구석에는 그림을 팔고 싶은 세속적 욕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음 이후에 성공한 빈센트 반 고흐
그는 살아생전 그림 한 점 제대로 팔지 못했다. 동생 테오에게 "화가의 의무는 자연에 몰두하고 온 힘을 다해서 자신의 감정을 작품 속에 쏟아붓는 것이다. 그래야 다른 사람도 이해할 수 그림이 된다. 만일 팔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면 그런 목적에 도달할 수 없다. 그건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행위일 뿐이다. 진정한 예술가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진지하게 작업을 해나가면 언젠가는 살람들의 공감을 얻게 될 것이다."(1882년 7월)라고 쓴 편지는 언젠가는 자신의 그림이 인정받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 같다.
그의 확신은 15년 후 암스테르담 스테델릭 미술관(Stedelijk Museum)에서 실현되었다. 동생 테오의 미망인이 가지고 있던 470여 점의 고흐 작품이 전시되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이 전시를 본 야수파나 표현주의 화가들은 자신들의 열정과 고통 그리고 격정을 예언한 선지자라고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런 성공과 찬사는 도저히 크기가 가늠되지 않을 정도로 올라버린 고흐의 작품 가격에 비하면 서막에 불과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의 경매가격
1987년 런던에서 열린 크리스티 경매장이 술렁거렸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그림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고흐의 <해바라기>(1888년)를 일본의 한 회사가 3,990만 달러(당시 환율로 약 310억 원)로 낙찰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6개월 뒤에는 2위로 밀려났다. 역시 고흐의 <붓꽃>(1889년)이 5,390만 달러(약 400억 원)에 경매된 것이다. 뒤이어 <닥터 가쉐의 초상>(1890년)이 8,250만 달러, 98년에는 고흐의 자화상인 <수염 없는 예술가의 초상>이 7,150만 달러 기록해 작품값을 경신해 나갔다.
2022년 11월 뉴욕 크리스티 경매장에서 30여 년만에 다시 최고가를 경신한다. 닥터 가쉐의 초상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낙찰된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창업자인 폴 앨런의 컬렉션이었던 <사이프러스 나무가 있는 과수원>(1888년)이 17천만 달러(지금 환율로는 약 22백억 원이 넘는다.)를기록한 것이다.
고흐의 그림에는 예술가의 열정과 정열이 담겨 있다. 붓 터치에 들어있는 넘치는 힘, 강렬한 색채들의 대기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모습, 그리고 노는 사람에게 고흐 자신이 가지고 있던불운한 점정에 빨려 들게 한다. 마치 고흐의 마술에 빠져 그림 속에 자신이 들어가 거닐고 있는 것처럼 만든다.
하지만 이런 찬사도 어쩌면 고흐에게는 부질없는 것이리라. 살아 생전에 자신의 그림을 제대로 알아주는 한 사람만 있었어도 "인생의 고통이란 살아있는 그 자체이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덧붙여서 : 시와 노래 그리고 미술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예술임을 알게 해주는 사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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