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으로 유명한 동양화가 심향 박승무가 있다. 평생을 야인으로 지방에서 작품활동을 하다가 1971년 <동양화6대가전>에 초대되어 팔순이 넘어 설경으로 인기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다시 이내 잊힌 동양화가 심향 박승무는 우리의 설경이 아니라 관념적인 겨울 풍경을 주로 그렸다. 쓸쓸한 감정을 자아내는 우리의 겨울 풍경이라기보다 상상 속에 있는 관념 속의 겨울 풍경을 그렸다고 할 수 있다.
심향 박승무의 생애와 예술
심향 박승무(深香 朴勝武, 1893~1980)는 유천 김화경의 겨울 풍경을 그린 동양화로 인기를 얻은 동양화가이다. 심향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났으나 대한제국 시절 관직에 있던 큰아버지(백부)의 양자로 입양되었다. 어려서부터 미술공부를 뜻을 두었던 것을 알았던 부친(백부)은 하는 수 없이 당시 궁내부 화원이었던 소림 조석진에게 소개하고 서화미술학교에서 공부하도록 허락했다.
'서화미술학교'는 근대에 최초로 공공의 성격(이 부분에 있어서는 다소 논란이 있을 수 있다.)을 띠고 미술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던 곳이었다. 당시 서화미술학교에서는 그림을 가르치는 교수를 '화사'(畫師)라고 불렀는데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晋, 1853~1920)과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과 그 외 몇몇이 있었다. 심향 박승무는 화사인 소림 조석진에게 동양화를 배우게 된 것이다.
서화미술학교 3기 동급생으로는 심산 노수현, 청전 이상범, 정재 최우석과 중도에 합류한 이당 김은호가 있다. 심향은 심전과 소전 두 화사에게 그림을 배웠으나 소림에게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진다. 서회미술학교 3년 과정을 마친 심향은 중국 상해로 건너가 중국 인사들과 교류하면 그림도 그려서 팔았다고 한다. 이후 일본을 거쳐 귀국하던 중에 부산에서 체포되는 등 일본 헌병의 감시 대상이었다. 점점 심해지는 일제 압력에 못이겨 전쟁물자구입을 위한 전시인 <조선남화연맹전>(1942)에 여러 작가들과 함께 강제로 참여하게 된다.
이 전시 이후 심향은 해방될 때까지 다른 전시에 참여하지 않기 위해 경기도 가평에 숨어 지낸다. 해방된 뒤에는 서울에서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광주와 목포를 오가며 지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다가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목포로 내려가게 된다. 그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대전에서 생활한 것은 휴전 이후 서울로 올라오다가 지인을 만나 그만 대전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1940년에 <10명가산수풍경화전>에 참가했던 심향은 1971년 <동양화6대가전>에 초대된다. 이 전시는 <10명가산수풍경화전>에 참여했던 10명 모두를 초대하려 했으나, 그 당시까지 생존했던 6명만이 참여하여 '6대가전'이 되었다. 이 전시가 계기가 되어 심향의 설경이 대중에게 인기를 얻으며 팔순이 넘어 소위 인기작가가 되었다.
심향 박승무의 <설경> 작품에 관하여
1960년에 그린 <설청계촌도>와 1974년에 그린 <설경산수>는 주제는 같지만 몇 가지 면에서 차이가 나다. 1960년 작품은 <동양화6대가전>을 치르기 이전에 제작한 것이다. 나이도 예순 중반으로 필치에 힘이 있을 때이므로 전체적으로 힘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근경과 중경 그리고 원경까지 세심하고 정성을 다해 획을 하니씩 쌓아 올린 듯이 치밀하게 보인다. 눈 덮인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가운데 부분에 있는 나무들 가지가 울창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정성을 다해 그렸다. 눈 덮인 산도 흰색으로 두지 않고 옆은 먹으로 조금씩 양감을 부여하고 있음도 볼 수 있다. 잿빛 하늘도 가장 가까이 있는 강물도 쉬이 그리지 않은 것 같다.
이에 비해 1971년 작품은 어딘지 모르게 분위기가 온화해 보인다. 이미 팔순을 넘기 나이에 제작한 것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가로로 긴 이 작품은 근경에 둥근 언덕을 배치해 뒷 배경이 더 멀어지도록 계획했다. 그리고 온화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인지 나뭇가지 위에 옅은 붉은색으로 덧입혔다. 자세히 보니 산의 형상을 만드는 공제선에도 같은 방식을 취했다.
가운데 부분이 늘어선 집들은 우리의 초가집도 기와집도 아닌 것이 어디 중국 지방의 것처럼 측면에 둥근 창이 나있다. 지붕 형식도 우리의 전통적인 형식으로 표현된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점을 맞추어보면 이 그림은 실경보다는 젊었을 적 보았을 법한 풍경을 관념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여겨진다.
1971년 <동양확6대가전> 이후에 그려진 작품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한창 인기가 올랐을 무렵에 그린 심향 작품이다. 세상이 그렇듯이 세월이 모난 돌을 갈아내고, 세월이 모난 심성을 갈아내다는 말처럼 심향의 예술세계도 부드러워진 것이리라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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