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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작가와 전시

눈오는 밤에 갑자기 떠오른 히로시게의 우끼요에(浮世繪)

by !))*!))* 2024. 1. 7.

에도시대에 유행했던 다색 목판화 우끼요에(浮世繪) 3대 작가 중에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1797~1858)가 있다. 일본의 명소를 시리즈로 제작하여 당시 일어났던 여행 붐과 맞물려 큰 인기를 끌었다. 그는 5천 점 이상 작품과 한 작품을 1만 부 이상 찍는 경우도 있을 만큼 소위 인기 작가였다. 어젯밤 갑자기 눈 내리는 서울 밤 풍경에서 히로시게의 <메구로 타이코 다리와 석양의 언덕>을 떠올렸다.  

 

 

 

우끼요에(浮世繪)를 이해하기 위한 간단한 사전지식

우끼요에(浮世繪)라는 뜻은 '우끼요'는 '덧없는 세상', '속세'라는 의미이다.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짧은 시간 동안 머무는 이 세상에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자는 의미이지만, 여기에서도 약간 분위기가 다르다. 이 덧없는 세상을 한탄하고 불평하며 살 것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유쾌하고 즐기면서 세상을 살자. 그러니까 유흥과 오락을 즐기면서 살자는 분위기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유흥과 오락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약간의 부정적인 느낌이 있지만, 우끼요에는 그런 의미나 분위기는 없다. 그러니까 이런 세상을 그린 그림(繪 일본어 발음으로 '에')이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에도 시대 즉  지금의 동경으로 도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 1543~1616)가 막부(幕府)를 에도(江戸, 지금의 동경)옮기면서 시작되었고, 250여 년이 흘러 그 끝은 1868년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기 직전까지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는 상업을 촉진시키는 정책에 따라 여러 물품들이 서양과 오가면서 경제가 크게 발전하였다. 돈이 넘쳐나는 에도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유흥거리가 우후죽순처럼 탄생했고, 그동안 없었던 새로운 음식들이 탄생했다. '가부끼'와 '스모' 같은 연극과 운동에 접목한 오락성 짙은 사업과  당시에는  패스트푸드였던 여러 형태의 스시(寿司 )를 비롯한 여러 음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지금은 널리 알려진 사실로 도자기를 포장하는 종이로 사용했던 우끼요에가 유럽의 인상파 화가들의 수집품이 되었고 그들의 화풍에 영향을 끼쳤다. 뿐만 아니라 에도의 여러 문화들이 유럽에 알려지면서 일본의 문화 이미지가 형성되고, 자포니즘 (Japonism)이라는 일본풍 사조까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歌川広重, 1797~1858)는

우타가와 히로시게는 에도의 야에스(八重州)라는 곳에 서 직급이 낮은 사무라이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안도 히로시게로(安藤 広重)로 우타가와 히로시게(스승의 성을 따라서 쓰는 전통에 따라  歌川를 사용했다.)를 함께 사용했다. 서로 다른 이름으로 작품이 소개되기도 하지만 실상은 동일인이다. 어쨌든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당시 유행하던 우끼요에를 배우려 우여곡절 끝에 우타가와 토요히로(歌川広)의 문하생으로 들어간다.     

 

거의 20여 년 동안 도요히로의 문하생으로 있다가, 스승이 돌아가시고 나서야 독립했다. 1831년 처음 <도토 메이쇼>(東都名所) 시리즈를 제작한다.  이 작품은 가츠시커 호쿠사이(葛飾 北斎 )가 제작한 후가쿠 36경(富嶽三十六景)에 영향을 받아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의 재능을 인정받은 첫 번째 시리즈였다. 

 

 

 

메이쇼에(名所繪) 즉 명소를 그린 그림 시리즈는 에도 사회에 불어닥친 여행 열풍과 함께 커다란 성공을 그에게 가져다주며 <토카이도 고츄산츠기>(東海道五十三次)는) 시리즈를 제작한다. 이 시리즌 3가지 버전으로 다시 발간될 정도 인기를 끌었다.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우끼요에 작품
우타가와 히로시게, 메구로 타이코 다리와 석양언덕, 목판화, 1857, 명소에도백경 시리즈 중에서

 

이 작품은 <메이쇼 에도 햑케이>(名所江戶百景, 명소에도백경) 시리즈 중에서 111번째 작품이다. 이 시리즈에서 메구로를  대상으로 한 작품이 5개가 있다. 히로시게는 점점 인기가 많아졌고 작품량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856년 <명소에도백경> 시리즈를 시작했으니 거의 말년에 제작된 작품이다. 100가지 명소를 제작한다는 이름으로 100 경이 붙어있지만, 실제로는 118점이다. 이 시리즈는 히로시게가 세상을 떠나기까지인 1858년까지 지속된다. 

 

이 시리즈는 에도의 계절에 따라 변하는 경치뿐만 아니라, 당시의 풍속과 생활상을 과감한 구성과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118점 중에서 3점은 히로시게가 죽고 난 뒤 제자들이 제작을 했고, 보통 제작 순서에 따라 번호가 부여되지만 이 시리즈는 계절로 구분하여 순서를 매겼다.  

 

이 시리즈는 에도 서민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유럽에까지 퍼져 유럽의 화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줄 정도였다. 히로시게는 5천 점이 넘는 판화를 제작하였고, 일부는 1만 장이 넘게 제작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메구로 타이코 다리 석양언덕>(ㅇ目黑太鼓橋夕日岡)는 제작월이 4월로 알려져 있어 눈 오는 풍경과 시절이 맞지 않는다. 이건 그렇게 중요한 사건은 아니다.

 

'타이코 바시'라는 다리 이름은 별칭으로 원래 이름은 찾지 못했다. 타이코는 우리나라 장구와 달리 배가 두툼하게 나온 북을 지칭하는 말이다. 즉 다리가 이것처럼 생겼다는 뜻인데 우리가 흔히 '아치형' 다리라고 부르는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의 메구로 강을 건너는 타이코 다리는 철구조물에 시멘트로 바뀌었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분위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여전히 유명한 것은 강 양옆에 늘어선 커다란 벚꽃으로 일본인뿐만 아니라 외국 관광객도 벚꽃이 필 때면 반드시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되었다.  

 

언덕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에 내리는 눈과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있는 풍경은 고즈넉한 저녁의 모습을 잘 전달하고 있다.  어젯밤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이 그림이 떠올랐다. 아래 그림은 같은 작품이지만 다리 밑부분에 색이 전혀 다르게 표현되어 있다. 판화 특성상 찍을 때마다 색 조합이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래 작품은 판을 하나 더 추가해서 새로운 버전으로 제작한 것처럼 보인다.    

메구로 타이코 다리와 석양언덕의 다른 버전
<메구로 타이코 다리와 석양의 언덕>의 다른 버전인 작품

히로시게의 작품을 찾다가 알게 된 사실

이 작품에 관해 이것저것 찾아보기 위해 흔히 말하는 인터넷 세상을 돌아다녔다. 의외로 히로시게와 우끼요에 관한 글들이 많이 있었다. 전문가보다 더 전문가(글쓴이의 정보가 없기 때문에 실제로 전문가인지도 모르지만)다운 좋은 글도 많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많았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에서 오류가 많았다. 누군가 잘못된 정보를 인터넷에 올리면 그것을 그대로 따라 쓰기 때문 일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여기에 있는 제목이다.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오류일 것이지만 검증이라는 과정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류가 그대로 전파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타이코바시 다리('바시'가 일본어로 '다리'라는 말이므로 중복)로 되어 있거나, 유시 언덕으로 되어 있기도 했다. 유시 언덕은 번역이 묘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석양의 언덕 혹은 석양이 아름다운 언덕쯤이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유시라는 언덕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석양의 언덕'은 메구로 타이코 다리 근처에 높은 언덕이 있는 곳을 말하는데, 이곳에서 보는 저녁노을이 아름답다고 에도 사람들만 아는 명소의 이름쯤 될 것 같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지역명은 아니다. 이곳은 특히 단풍이 지는 가을에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인기를 끌었던 장소였다. 이런 제목에 관한 것 이외에도 우끼요에, 작가 이름, 등등 잘못된 정보들이 넘쳐났다. 앞으로 이런 것이 어떤 문제를 일으킬지는 알 수 없지만, 정보에 대한 검증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되었다. 

『目黒太鼓橋夕日の岡』:浮世写真家 喜千也の「名所江戸百景」第57回(https://www.nippon.com/)에서 인용

 

위 사진을 찍은 이는 일본의 사진작가로 히로시게의 백경을 찾아다니며 히로시게 작품과 현재의 모습을 비교해서 여행자에게 정보를 주고 있다. 사진작가는 그래도 절묘하게 폭설이 내리는 날 그것도 행인이 우산을 받치고 가는 장면, 100경 속의 메구로와 거의 유사한 분위기를 잡아냈다. 보다 자세한 정보는 일본 여행자를 위한 누리집에서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nippon.com/ja/guide-to-japan/gu004057/

 

예전이 다리는 파괴되어 몇 번 다시 지었다가, 1991년 현재의 모습으로 건설되었다. 난간 정도에서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아치형이 사라져 평평해진 다리 모습은 히로시게의 작품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없다. 눈을 그린 또 다른 글도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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