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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중기, 오쿠무라 마사노부(奧村政信) - 우키요에 (3)

by !))*!))* 2024. 12. 19.

 

 

 

에도에 막부가 들어서고 1700년대로 들어서며 더욱 상업은 발전하게 되고, 우키요에 수요도 늘어어만 갔다. 이 시기에 오쿠무라 마사노부(奧村政信 1686~1764), 니시무라 시게나가(西村重長, 1697?~1756), 이시카와 토요노부(石川豊信, 1711-1785) 등이 등장한다. 이들은 우키요에의 다양한 제작벙법을 개발하여 보다 대량생산이 가능하게 하고 특히 당시 서양으로붜 유입된 '원근법'을 도입하여 독특한 화면구성법을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오쿠무라 마사노부의 작품만 소개한다.

 

오쿠무라 마사노부(奧村政信 1686~1764)

오쿠라 마사노부는 1686년 에도에서 태어났다. 토리이 키요노부(鳥居淸信, 1664~1729 )(앞 글에서 소개)  작품을 혼자 즉 독학으로 연구하며 우키요에를 배웠다. 당연히 키요노부의 그림을 모방하는 것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중국에서 수입된 서적으로 중국 판화를 연구하여, 서양식 원근법(遠近法, perspective)을 알게되었고, 이를 연구하여 우키요에 최초로 작품에 도입한 작가이다. 선원근법을 독학으로 배운 탓에 잘못 이해하고 활용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공간감과 과장된 표현을 돋보이게 한 원인이 되었다. 이렇게 과도한 원근법을 사용한 것을 마사노부 스스로 부회(浮繪 우키에 : 공중에 뜬 그림)라고 불렀다.

 

마사노부는 1740년대부터 선원근법을 사용하여 극장, 상점, 거실 등 실내를 흥미롭게 묘사했다. 이는 당시 에도나 교토에 거주하는 도시인들이 가진 엿보기 취향을 간판하고 이를 재빠르게 도입한 그의 상술과 우키요에의 특성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인 <시바이쿄겐우키에곤겐>(芝居狂言浮繪根元, 1744)은 우키에의 초기 작품으로 중국 판화에 표현된 원근법을 가부키 극장의 내부를 그리는데 이용하고 있다.

 

그는 50여 년 동안 우키요에 제작 활동하면서 다양한 판화 기술을 개발하거나 확장하는데 일조했다. 스미즈리에(墨摺繪)를 비롯해, 단에(丹繪), 베니에(紅繪), 우리시에(漆繪), 베니즈리에(紅摺繪) 등은 물론이고 붓으로 직접 그린 육필화도 남겼다. 특히 우리시에(漆繪)를 고안한 것은 오쿠무라 마사노부라고 알려져 있다. 부드러운 화풍으로 스미즈리에와 탄에를 제작하면서도, 1715~20경 년에 우리시에(漆繪) 수법으로 미인도와 배우를 그리면서 수법은 우키요에 제작법으로 순식간에 펴져 나갔다.

 

베니즈리에(紅摺繪)가 고안된 것은 1740년경 당시 나가사키에서 수입된 중국의 유색 판화의 영향이라고 알려진다. 초기에는 홍, 녹 그외 몇 가지 색을 이용한 것이었으나, 오쿠무라 마사노부, 니시무라 시게나가(西村重長(1697?~1756) 등이 중국 유색 판화 수법을 받아들여 작품을 제작했다. 베니즈리에(紅摺繪)는 1760년경에 이르러서는 색의 숫자가 더욱 많아져 궁극적으로 다색판화로 전개된다.

 

 

오쿠무라 마사노부의 대표 작품들

1) 유색삼복대(遊色三福つい)

유색삼복대는 에도 요시하라(江戸の吉原), 쿄토 시마바라(京の島原), 오사카 신쵸(大坂の新町), 세 도시의 유곽을 대표하는 유녀의 모습을 스미즈리(墨摺)로 제작한 목판화이다.

 

각 유녀의 기모노에는 도시의 이름(에도(江戸), 교토(京), 오사카(大坂), 가운데에서 시계 방향으로)이 검은색 원안에 흰색 글씨로 쓰여있고 이와 함께 길상무늬인 대나무(적설에도 꺾이지 않는), 소나무(수명이 긴), 매화(추운 겨울에도 꽃이 피는)가 그려져 있다.

奧村政信, 遊色三福つい, 18세기, 墨摺繪, 중요문화재, 동경국립박물관소장

 

遊色三福つい 文化遺産オンライン

奥村政信は紅絵の時代から錦絵誕生直前までの長い間活躍し、様々な画面形式を工夫した。本図は江戸の吉原、京都の島原、大阪の新町という三都の遊女を描いたもので、流麗な描線と優美

bunka.nii.ac.jp

 

삼복대(三福つい)는 불교의 삼존불 형식에서 온 것으로 가운데 부처님과 좌우에 보살이 있는 3개의 도상이 있는 형식을 말한다. 이 스미즈리에도 가운데 에도 요시하라 유녀를 중심으로 좌측오사카 신쵸와 우측에 쿄토 시마바라의 유녀를 그려 넣어 마치 불교의 삼존불 형식을 따르고 있다. 유녀는 유곽에서 몸을 파는 여인이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주 저속하게 여기는 않은 듯하다.

 

2) 나카무라자 카나데혼 쥬우신구라(中村座仮名手本忠臣藏)

 

서양의 선-원근법을 우키요에 작가가 배우기 시작한 것은 막부가 기독교 서적을 제외한 서적에 한해 금서령을 해제하여 중국에서 서적이 도입되기 시작한 1720년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에 들어온 여러 책들에 의해 원근법의 정보를 습득할 수는 있었으나, 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다. 따라서 소실점이 하나로 모이지 않고 여러 개이거나, 지평선과 떨어진 그림도 있다.

奧村政信, 中村座仮名手本忠臣藏, 漆繪, 32×46cm, 1743, 일본우키요에 박물관 소장

 

오쿠무라 마사노부는 스스로 이런 그림을 부회(浮繪 우키에)라고 부른 이유는 가까운 곳에 있는 사물은 공중에 붕 떠있는 모습이고, 멀리 있는 사물은 잘 보이는 형식이었기 때문이다. 동양화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 형식이나 평행 원근법에 익숙하던 당시 사람들에게 신선한 흥미를 일으켜 곧 인기를 끌게 된다.

 

마사노부가 처음 원근법을 도입해 제작한 시기는 1739년으로 여겨진다. 마사노부가 1725년 설립한 목판화 전문 출판사를 세우고 부회출판행사(浮繪出版行事)를 1739년에 개최했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 아마 자신의 책을 출판한 행사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이 시기의 작품은 남아있지 않다.

 

남아있는 작품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나카무라자 카나데혼 쥬우신구라‘(中村座仮名手本忠臣藏) 작품이다. 우루시에(漆繪 : 먹에 옻칠을 더해 먹색이 윤기가 나게 만든 형식)로 제작한 작품이다. 중앙 기둥에 쓰인 문구를 통해 나카무라 극장이 1743년 다음 해에 공연할 작품을 소개한 글이 있다. 원근법을 잘못 이해해서 소실점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어, 중앙에 있는 악기 연주자들만 크게 그려져 눈에 들어오는 것을 알 수 있다.

 

 

3) 시바이 교겐 우키에 네모토(芝居狂言浮繪根元)

이 작품은 위 작품과 같은 극장(나카무라 극장)에서 상연되는 장면을 1750년(?)에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에 그린 제작한 작품과 원근법 형식은 그대로 적용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마루 바닥을 표현한 선이 앞에 작품과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베니에(紅繪)로 홍색을 덧입힌 것으로 판화기법과 육필이 더해진 것이다.

 

* 横大判 : 문장설명이 필요 없고 책의 형식과도 떨어진 완전히 감상을 위한 판화로 독립한 형식을 말한다. 책 양면을 모두 사용하는 구조도 있으며, 스미즈리에(墨摺繪)에 색을 칠한 판화도 만들어졌다.

奧村政信, 芝居狂言浮繪根元, 横大判, 紅絵, 32×46cm, 1750(?)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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