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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시장

뱅크시의 거리 미술이 인사동 갤러리로 들어와 전시한다?

by !))*!))* 2024. 5. 23.

리얼 뱅크시(Real Banksy)라는 제목으로 인사동 그라운드 서울에서 2024년 10월 20일까지 열린다. 그의 유명세 덕에 관람객이 꽤나 몰리는 듯하다. 하긴 많은 언론에서도 이 상업성 짙은 전시를 기사로 내보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뱅크시가 자본주의를 거부하고 거리의 작가로 행세하지만, 결국 상업공간에 들어와 누군가의 자본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뱅크시 전시 포스터
뱅크시 전시 포스터

 

네이버 예약 :: 리얼 뱅크시

2024.05.10 ~ 2024.10.20 그라운드서울 기획전시관 (구)아라아트센터

booking.naver.com

 

 

 

 

'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만들고, 편안한 자를 불안하게 해야 한다'

여기서 예술의 목적 혹은 타당성을 따지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지만, 예술이란 말을 삭제하면, 뱅크시 행위의 결과는 어느 정도를 이루고 있다. 아니 어느 정도가 아니라 못 말리는 자본주의는 오히려 뱅크시의 행위 결과물로 더 편안해지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는 예를 들면, 2018년 10월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풍선과 소녀'(Girl with Balloon)는 104만2천 파운드(당시 환율로 16억9천만원)에 낙착되는 순간 뱅크시가 액자 내부에 숨긴 파쇄기가 작동되면서 절반쯤 파쇄되어 나왔다.

 

이 작품은 '사랑은 쓰레기통에'라는 제목으로 바뀌어 2021년 경매에 다시 나와 1천870만 파운드(당시 환율로 약 304억) 벵크시의 결과물로 경매사상 최고가 거래 기록을 세웠다. 아니, 이 작품을 약 17억원에 구입해 3년 만에 약 304억원 판매한 어떤 이가 거의 18배 이익을 남겼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뱅크시가 경매를 조롱하려고 '풍선과 소녀'를 파쇄하는 퍼포먼스를 벌였으나, 오히려 그것이 흥밋거리로 만들어 가격을 천정부지로 솟게 만들었다. 제목도 '사랑은 쓰레기통에'라고 제작자의 의도와 다르게 붙여서 말이다.

 

아무리 제작자의 손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현대미술에서 작품 제목을 소장자 마음대로 바꾼다는 것은 상식이 아니다. 

 

뱅크시가 아무리 그래도 자본주의는 못 말린다.

 

그래서 불안한 자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든다. 그들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대다수는 말이다.

 

거리의 미술이 실내로 들어오면 그것은 거리의 미술이 아닌 것이 된다?

뱅크시는 얼굴 없는 작가이다. 공식적으로 혹은 스스로도 작가(Artist)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고 한다.(잘 모른다. 이게 정말인지는) 어쨌든 그가 거리에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자신의 방법대로 공공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일은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이 메시지가 공공에게, 사회에게 어떻게 해석되고 이해되는지, 그리고 결과는 어떻게 나타나는지 그것이 중요한가?  다시 말하면 뱅크시의 의도와 목적이 공공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에 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예상 밖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뱅크시의 의도와 목적은 공공에게 울림을 주고 여러 곳에서 횡횡하고 있는 비합리적인 행동에 대한 고발, 종종 대중에게 위트를 전달하려는 재미있는 장면을 연출한 제작물 등은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결과물에 초점이 남는다.

 

모든 미술 작품이 마찬가지이지만 결국은 물건 그 자체인 것이다. 

 

뱅크시가 아무리 자신의 의도와 메시지를 전달하려 해도 그것을 담은 그 결과물 그 물건이 목적물이 되는 세상이 바로 자분주의 세상이다. 쉽게 말하면 이것이 돈이 된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

 

결국은 인사동 한 갤러리에서 열리는 '리얼 뱅크시'도 뱅크시의 의도와 메시지에 관계없이 관람객은 뱅크시라는 이름에 매몰되고 만다.

 

과연 이것이 거리의 미술이 가지는 의미와 목적인가? 그것이 의미 있다고 하더라도 실내 공간에 들어온 이상 그것은 이미 뱅크시의 의도와는 멀다. 그러니 뱅크시의 결과물이 어쩌면 의미 없는 산물이 되는 과정을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남들의 생각, 남들이 해석한 텍스트, 그들의 상업행위에 도움을 주는 기사, 나아가 뱅크시가 주장하는 메시지와 의미도 부질없는 것이 된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행동과 생각이 점점 더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그래도 못 말리는 자본주의 세상에 사는 게 다행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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