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관식3 '소정 변관식'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려 했으나, 고독만 남겼다...3편 1953년 휴전이 되고 서울로 올라온 변관식은 어느덧 쉰이 넘은 나이가 되고, 작품세계는 완숙해졌다. 그는 돈암동에 '돈암산방'이라는 작업실을 마련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세계가 담긴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해방 이전에 사생 여행을 하면서 남겼던 스케치를 바탕으로 '금강산 시리즈'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그림이 대다수이다. 해방 전에 그린 스케치로 자신만의 관념산수를 제작하다. 50년대 변관식의 작품 중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것들은 금강산을 그린 작품들이다. 크기도 대작들이 대부분이다. 실경을 바탕으로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풍경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대로 옮기려는 의도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화면 구도에 따라 사물의 위치를 바꾼 작품들이다. 그 풍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풍경.. 2024. 4. 17. '소정 변관식'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려 했으나, 고독만 남겼다...2편 변관식은 1920년대부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1925년부터 29년까지 일본 유학을 다녀온다. 일본에서 소위 신남화풍을 습득하고 돌아온 그는 미술계 활동보다는 명승지를 다니며 사생을 위주로 제작형식을 취한다. 사생을 바탕으로 한 금강산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그의 작품제작에 주된 소재가 된다. 이런 상황은 1953년 한국전쟁까지 지속된다. 1920년부터 일본을 유학하고 귀국한 1929년까지 이 시기에 변관식은 서화협회와 조선미술전람회를 중심으로 작품을 출품했다. 민족의 역사적 전통을 새롭게 찾으려는 동양(중국이 아니라 이상향으로서 동양) 개념이 삽입된 동양화로 진전이 요구되던 시기였다. 한편으로는 조선미술전람회의 심사위원들의 화풍과 조선에 유입된 일본화풍의 영향도 동시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 2024. 4. 15. '소정 변관식'은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려 했으나, 고독만 남겼다...1편 소림 조석진이 외조부이고, 평생지기 이당 김은호와 사형지간인 의재 허백련과 같은 시대에 살면서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려 했으나, 모진 우리의 역사는 그를 고독으로 몰았다. 세속의 부조리를 비판하면서 나서지 않았던 그는 사생을 위한 여행은 잊지 않았다. 세상이 던진 고독을 술로 달래며 남긴 그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진정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 소정 변관식은 외조부 소림 조석진을 따라 서화에 입문했다.소정 변관식(小亭 卞寬植, 1899~1976)은 황해도 웅진에서 한의사인 아버지와 화원(畫員) 집안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로 태어났다. 그는 외가 쪽 재능이 있었는지 외조부 조석진을 따라 1910년 그의 나이 12살에 서울로 올라와 보통학교와 조선총독부 공업전습소 도기과를 졸업했다. 당시 보통학.. 2024. 4. 1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