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전 안중식2 안중식은 같은 장면인 '백악춘효'를 왜 두 점 그렸을까? 그것도 같은 해 여름과 가을에 - 2편 심전 안중식(心田 安中植, 1861~1919)은 우리 근대미술 태동에 있어서 소림 조석진(小琳 趙錫晋, 1853~1920)과 함께 중요한 역할을 했던 관료이자, 도화서 화원이자, 동양화가였다. 고종이 나라 부강책으로 중국으로 파견한 영선사의 유학생으로 가기도 하고, 어진화사로 또 서화미술회 교수로 활동한 작가이기도 했다. 그는 은연자중하며, 서화계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안중식이 미술에 입문한 불확실한 계기와 중국으로 유학을 가다 조부 때부터 무과에 진출한 중인 가문(사대부 가문이라는 설도 있음) 출생으로 알려진 안중식은 어릴 때부터 그림에 소질이 있었다고 하는 집안 친척의 증언이다. 먼 친척이었던 도화서 화원 안건영(安建榮, 1841~1876)에게 어릴 적 그림을 배웠다는 설과 장성하여(1882년.. 2024. 3. 26. 안중식은 같은 장면인 '백악춘효'를 왜 두 점 그렸을까? 그것도 같은 해 여름과 가을에 - 1편 심전 안중식은 1915년 한 해에 백악춘효를 두 점 그렸다. 이미 나라는 잃어, 나라의 궁궐마저 허물어 물품 전시장(일본 총독부가 시정오년기념 조선물산공진회를 경복궁에서 개최)으로 전락한 모습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단정한 예서(隸書)로 백악춘효(白岳春曉)라고 명명한 그림을 그린 심정은 어떠했을까. 백악춘효 (白岳春曉)를 그린 배경과 의미 고종이 1863년 고종이 즉위하면서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근대 국가로 나아가려는 열망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리 성공적이 못했던 일련의 일들로 점점 나라는 기울어 갔다. 1897년 갑오개혁으로 고종은 국호를 대한(大韓)으로 고치고 다시 제국의 꿈을 꾸었으나, 소위 '을사5조약'으로 외교권을 박탈당하고 경찰권까지 뺏기고 만다. 1910년 한일합방조약으로 나라가 .. 2024. 3. 25.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