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아시안컵 축구 국가대표 사건으로 본 단상 :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

by !))*!))* 2024. 2. 16.

'우리'라는 말은 더 이상 우리를  뜻하는 시대는 아니다. 말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고 배웠지만, 그래도 변하면 안 되는 것도 있는 세상이기를 믿었다. 하지만 나눌 수 없을 때까지 나누어, 공백과 틈이 없는 디지털 세상처럼 한국이라는 세상은 변했다.  

축구국가대표
돌아서는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

 

 

 

 

온 나라의 이목을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 사이에 일어난 행동 하나로 뒤엎고 있는 뉴스에서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니다라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적어도 2002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을 이루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우리에게 우리는 있었다. 그래서 광화문 광장에서, 월드컵 경기정에서 온 나라 구석구석에서  붉은악마 유니폼을 입고 하나가 되어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 한 곳을 바라보며 하나같이 염원했다.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는 그것을 신화라고 규명했다.   

 

하지만 불과 20년 만에 우리는 우리를 삭제했다. 나만 있고 우리는 없애 버렸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슨 일 때문에 우리가 우리라는 말이 갖는 뜻을 삭제하게 되었을까?

 

국어사전에서는 우리는 나, 너처럼 대명사라고 규정하고 있지만, 그건 몰라도 우리는 우리라는 말을 이렇게 쓴다. 우리 집사람, 우리 남편, 우리 딸, 우리 아들, 우리 회사, 우리나라 이렇게 쓴다. (요즘에는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어색 혹은 틀렸다고 이렇게 쓰지 않으려는 현상도 꽤 퍼져있기는 하다.) 그래서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말보다 우리나라를 더 많이 쓰는 것이다.

 

우리라는 소리를 라는 객관적이고 위치 관계를 분명히 하기보다는, 한 곳을 바라보는 운명 공동체를 뜻하는 말처럼 사용한다.

 

 

 

 

돌이켜 2002년 이전을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라는 단어를 훨씬 광범위하게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축구라는 단체 운동에서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생활과 문화 속에서 드러난다. 우리의 정체성을 극명하게 드러낼 수 있는 대표적인 단어로 꼽힌 적도 있다. 우리의 정서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대표 한글로 정(情)우리였던 기억이 그것이다.

 

이제는 이런 기억을 추억으로 남겨야 하는 시기가 된 것 같다. 어쩌면 추억마저 사라지는 시간이 올지도 모른다. 세월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겠지만. 

 

그런데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아닌 것을 보게 되는 것이 축구나 말(언어)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미술에도 이런 비슷한 현상은 오래전부터 볼 수 있었다.

 

이런 기류와 현상은 미술문화를 이루는 여러 부분에서 모두 찾을 수 있지만,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은 -장르, 매체 어떻게 규정해야 정확할지는 모르겠지만- 동양화에 대한 무관심이다. 조선에서 선비가 교양으로 갖추어야 했던 시서화( 畵)에서 분리된 동양화는 이제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 우리문화와 정서를 가장 오랫동안 표현해 왔던 매체가 외면받고 있는 것이다. 

 

꽤 오래된 일이 되기는 했다. (지금 축구 국가대표 팀에서 벌어진 일보다 훨씬 오래되었다.)  

 

 

 

 

우리가 우리를 대수롭지 않게 보는 세태가 심해질수록 동양화도 하향 길을 걸어왔다. 우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철저한 탐구를 표현해 왔던 전통적인 매체로써 기능을 삭제해 버린 것이다. 동양화가 이렇게 된 이유는 여러 복잡한 역사적 사실과 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90녀대 이후부터 외면받던 동양화만이 우리에 대한 고민과 탐구를 버린 것은 아니다. 거의 모든 미술 제작분야에서는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해도 되겠다. 남들이 하는 것, 남들의 모습, 남들의 생각, 이런 것을 슬쩍슬쩍 엿보며 따라가기 바쁘다고 하면 지나치게 비약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굳이 서구의 현대미술을 쫓아간다고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제는 내실을 다질 때가 되었다. 그동안 남들 사상과 모습을 따르기 바빴지만, 이제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탐구할 시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더 많은 우리가 한국미술이 아니라, 외국미술을 좋아하기 전에 우리를 탐구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추구하지 못할 정도로 망각하기 전에 말이다.

 

겉만 반지르르한 우리들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은 에제 그만해야 한다.

그런 것은 금세 시들게 마련이다.    

 

 

이전에 발행한 김화경의 천산비설도가 생각나는 새벽이다. 어제 대낮에 내린 눈때문인가. 

 

잊혀진 겨울풍경을 유천 김화경의 동양화로 다시 추억하다.

 

잊혀진 겨울풍경을 유천 김화경의 동양화로 다시 추억하다.

우리에게 추억과 상상으로 남은 겨울 풍경을 그린 유천 김화경의 '설경'이 생각나는 시절이다. 초가집 기와집 몇 채 있는 작은 마을에 눈이 내리는 풍경은 이제 그림으로만 남았다. 첩첩산중을

red-pig-11.tistory.com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톡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