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유치원에 다니는 녀석이 뜬금없이,
"그림이 뭐어야?"
"그림? 그리는 거지 뭐."
"그러문, 그리는 거가 무어야?"
말문이 막힌다. 왜 그리는 걸까? 무엇 때문에 그리는 걸까? 사과를, 꽃을 그리는 걸까? 그것만 그림일까? 백남준이 만든 비디오 아트도 있고, 마구 휘갈긴 듯한 피카소 그림도 있는데. 이들은 사과나 장미꽃은 그리지 않은 것 같다.(아니, 그린 게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람들은 이들을 세계적인 미술가라고 알고 있다.
그림이 뭐지? 도대체 무엇을 그림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미술을 어떻게 설명해야 알아들을지. 어떻게 말하면 이 꼬마가 쉽게 머리를 끄덕일까? 막막하다. 어디서 들은 대로 질문을 해댈 텐데. 난감하다.
시간이 뭐야?
햇빛은?
공간은?
전기는?
비행기는 어떻게 하늘을 날아, 배는 어떻게 물에 떠?
들은 것 같기는 한데 , 설명해 주려니 제대로 아는 게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다시 그림이 무엇인가 생각해 보자.
'그림이란 종이 같은 것에 연필이나 크레용으로 사람이나 풍경을 그리거야.' 이렇게 답변을 생각해 놓으니 어딘가 영 찜찜하다. 틀린 것 같지는 않지만 3, 4학년 초등학생 답 정도인 것 같아서 말이다. 따지면 이 답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고흐의 그림이 얼마에 팔렸고, 피카소 그림이 1,000만 달러에 팔렸다는 뉴스를 들으면 이렇게 쉽게 말할 일이 아닌 듯싶기도 하다. 요즘처럼 영악한 세상에 이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것에 그 큰돈을 쓸리 없기 때문이다.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그림 곧 미술작품이란 느끼거나 생각한 것을 어떤 재료로 그리거나 만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어떤 것을 만들어 냈다고 해서 그림 혹은 미술작품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더 신중하고 면밀하게 미술작품의 성격에 대하여 살표 보자.
그림, 미술작품은 무엇인가를 그리거나 혹은 만들어 냈다는 그 자체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것은 과거의 누구 하고도, 과거에 있었던 그 무엇과도 다른 독창적이면서 창조적인 것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거나, 만든다는 그 행위 자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작품을 구상하고 재단하여 독창성을 드러내는 정신적 혹은 내적인 측면과 또 다른 하나는 물체를 대상으로 하여 작품으로 완성시켜 가는 기술적 혹은 외적인 측면이 그것이다. 이것은 기능에 대한 능숙함과 그 정열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림, 미술작품을 정신적, 기술적 혹은 외적인 가치 두 가지를 모두 갖추고 만들었다는 행위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용 혹은 실용적 목적이 중심 가치를 가진 것은 아니다.
여기서 독창성 혹은 창조성이라는 것은 당연히 제작하는 사람, 작가의 존재를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과거의 미술작품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각 시대의 의식과 관습과 문화를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그것을 물체로 실현해 내는 것에서 우리는 위대한 미술가, 예술가를 만나는 것이다. 인간의 상상과 이상 혹은 유희적 사고를 실현해 내는 산물 즉 작품을 만날 때 우리는 예술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림, 미술작품도 모든 일상적 물체는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기본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위에서 말한 것처럼 그림, 미술작품은 실용적 목적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더 우위에 두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존재이다. 작품에 담겨있는 내용과 형식의 결합이 만들어 낸 의미와 상징이 있음으로 해서 예술이라는 특수한 존재가치를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는 감상자마다 다르게 보일지 모른다. 다양한 감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림, 미술작품이 다양하게 변화한다는 의미와 같다. 그림, 미술작품이 가지는 외면의 형태는 그대로 존재하지만, 시대와 공간에 따라 그것이 가지는 의미와 해석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작품은 변하지 않는 것이기도 하지만, 무한히 변화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면, 작품 속에 존재하는 의미와 상징은 비록 작가 개인의 능력과 독창적인 의도로 만들어졌지만, 작품을 보는 감상자는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그 작품을 이해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성은 그림, 미술작품만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모든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 중에 하나이다. 그림, 미술작품의 위대한 것은 작가의 이름과 명성에 놀라는 것이 아니라, 작품 속에 내재한 다양한 인간의 정신적 사고를 읽을 수 있음으로 해서 놀라는 것이다.
이제 그림, 미술작품에 대한 설명을 다시 해야겠다.
‘그림, 미술작품이란 인간의 다양한 생각과 모습을 시각화한 무형, 유형의 것을 말한다.’
어! 이렇게 말하면, 그 꼬마 녀석 또다시 꼬치꼬치 물어대겠는데…